아시다시피 뒤늦은 지붕킥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고, 또 한번 꽂히면 끝까지 보는 편이에요. 모래시계가 그랬고 네멋대로 해라, 연애시대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붕킥 만큼 등장인물에게 감정이 몰입된 것은 그전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편을 보고 아직까지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틀을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다른 드라마들은, 제가 생각했던, 또는 누구나 예상했던 엔딩대로 끝났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김병욱 피디는 지붕킥을 ‘성장드라마’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말대로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장했습니다. 1회부터 126회까지 모든 편을 외장하드에 담아뒀습니다. 어제 마지막편을 보고 생각나는대로 이전 에피소드들을 다시 '둘러'봤습니다.
초반부에는 정말 시트콤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자'가 있습니다. 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세경과 신애입니다. 세경 자매가 성북동 가족에게 들어가면서 순재도, 보석도, 현경도, 무엇보다 해리도 성숙합니다.
그러나 세경은 남들을 성장시키기는 하지만 스스로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세경에게는 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피엔딩을 원하는 팬들의 원망과 욕설을 들으면서 세경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김병욱 피디는 절대로 이 세계의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중졸 학력의 21살짜리 여성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이 사람에게는 딸린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똑똑합니다. 현실을 직시할 줄 압니다. 서울대 출신 의사와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랑니를 뽑던 날 실감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고등학생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동생과 자신은 차가울 길 밖으로 나앉을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고심 끝에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남태평양 섬으로의 이민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민을 간다고 해도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제 그의 청춘은, 사랑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126회의 에피소드 중에서 세경이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한 순간은 마지막회 마지막 시퀸스에 불과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세경은 지훈에게 그동안 담아두었던 마음을 꺼냅니다. 아마도, 세경은 행복했을 겁니다. 지난 9월 지붕킥이 시작한 이래, 가장. 그렇기에 멈추고 싶었겠죠. 전 그래서 지붕킥의 엔딩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가슴이 먹먹한 것은 어쩔수 없네요. 여느 드라마처럼 세경이 지훈과 준혁의 사랑을 받고, 순재와 현경의 인정을 받고, 신애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것이 비록 비현실적일지라도. 더 많은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행복을 줬을 겁니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판타지를 줄 의무도 있으니까요.
첫회부터 다시 둘러보니, 60회가량까지는 지붕킥은 정말 최고의 시트콤이었습니다. 에피소드 중에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황정남이 등장한 41회는 그 절정이었죠. 그리고 이후로는 어떤 드라마보다 계급간의 사랑을 잘 다룬 멜로였습니다. 물론 49회 세경이의 사랑니 에피소드에서 그 조짐이 보였죠.
아쉬움은 있습니다. 화자인 신애의 비중이 작아졌고, 애초에 설정했던 세호의 캐릭터도 사라졌습니다. 시트콤의 미덕인 웃음도 마지막회에는 없었죠.
그래도 김병욱 피디에게 고맙습니다. 지난해 9월7알부터 올해 3월19일까지 하루하루 설렜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경이와 지훈의 대화. 누군가 최고의 엔딩을 꼽으라고 하면 전 한동안은 주저없이 그 장면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