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킥에서 지훈의 세경에 대한 감정 묘사.

  • agota
  •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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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결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지훈이가 세경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게 드라마상으로 더 많이 드러났어야 한다는 비판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요. 스스로 인지하기를 거부한 사랑, 사회적 입장과 계급차에 대한 부담 때문에 봉인해버린 감정이 시청자들이 가볍게 봐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밖으로 드러나게 표현되었다면 마지막 장면이 김병욱 감독이 의도했던 그런 순간이 될 수 없었을 거 같아요.

지훈이 동료 의사에게 말했던, 세경이 남의 집에서 도우미 하는 불쌍한 애니까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건드리지 말라는 충고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자괴감' '비참함'까지 숨김없이 드러낸 세경이의 고백은 사회적으로 번듯한 위치에 있는 어른으로서 그 '중졸 식모 소녀가장'을 연애 감정의 대상에서 아예 배제시켰던 '아저씨'가 자신의 본심을 (좀 과장해서)돈오각성하게 되는 촉매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럼 정음(준혁)이는 뭐냐!라는 비난들을 보면.... 사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수학공식처럼 딱 잘라서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지붕킥에서 그런 애매한 감정 묘사를 꽤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시청자들이 시트콤에서 기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설정의 한계랄까,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세경에 대한 지훈의 봉인된 감정이라는 설정 역시 주제의식면에서 볼 때는 옳았지만, 작품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각하면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고요.

사람의 마음이 온갖 색상이 휘몰아치는 우주 같은 곳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도, 시트콤을 볼 때는 예술영화를 볼 때와는 달리 극중 상황과 캐릭터의 감정을 더 납작하게 받아들이게 된달까요. 하여튼 김스뎅은 진짜 대책없고 무서운, 타협안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저는 하이킥을 둘러싼 팬들의 개싸움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게 몇번 있었는데, 처음은 신애에 대한 악담들이었고, 종영 이후에는 세경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을 보면서였어요. 신애의 식탐이나, 해리 인형을 만져보고 싶어 하는 것, 크레파스를 같이 쓰려고 하는 것에 대해 짜증난다느니 천성이 탐욕스럽다느니 비호감이라느니 하면서 악플이 달리는 걸 보면서 정말로 쇼크를 받았거든요.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약자들에 대해 강퍅하구나, 모든 것을 가지고도 남의 것 하나를 욕심내는 해리에게는 도리어 너그러우면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주눅들어 눈치보는 애한테는 그 주눅들어 있음을 비난하는 게 요즘 세상이구나 싶었어요.

저는 김병욱 감독이 이런 결말 - 세경이 자신의 억눌렀던 감정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순간에 시간을 멈추는 것이 최하층 계급 소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엔딩이라는 생각을 고집한데는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한 절망이랄까 실망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저부터가 세경이에 대해 요부라느니, 소름끼치는 어장관리녀라느니, 음침해서 배우까지 싫어졌다느니 하는 비난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지붕킥의 결말을 조금 더 납득하게 됐거든요.

세경이의 마지막 대사 중에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첫번째 이유가 신애가 자기처럼 쪼그라드는 거 같아서, 그 식탐 많은 애가 먹는 거에 눈치를 보고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는 걸 보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했어요. 사실 세경이는 정말 감독의 판타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장점이 너무 많고, 그러면서도 매사를 조심하는 캐릭터였잖아요. 그렇게 무결점에 가깝게 만들어놔도, 이 정도로 화살이 쏟아지는데... 실제 세상에서 보통의 욕망과 보통의 장단점을 가지고서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어떤 곳일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지붕킥이 많은 시청자들이 바랐던 것처럼 몇년 후 순재네 가족들과 한옥집 식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왁자지껄한 에필로그로 보여주고, 마지막에 대학생이 된 준혁과 세경이, 혹은 남태평양 섬에 의료봉사를 온 지훈이와 세경이가 재회해서 마주보고 미소지으면서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달달한 결말을 맞았다면... 일단 저는 싫었을 거 같습니다. 다른 드라마에서 다 아주 쉽게 하는 이야기고, 다수가 드라마에서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지만, 김병욱까지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날카로운 이야기들은 다 뭐가 되나 싶었을 거예요.

결말자체보다, 결말까지 오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있었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주제를 이런 설정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국 시트콤에 맞는 일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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