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신애라는 이름의 욕망

  • 익명
  • 03-22
  • 4,043 회
  • 0 건
  

1. 어제 새벽에 아래 글 리뷰를 보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어요.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page=2&sn1=&divpage=37&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0586

2.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금새 지워버려서...
신애랑 세경이랑 떡볶이 인질극 했던 에피소드 정말 좋아하거든요.
처음엔 좀 어안이 벙벙했어요. 맨 마지막 장면에 줄리앤이 돈가지고 뛰쳐나가고
떡볶이 집에서 세경과 신애가 라면을 먹잖아요 .
신애가 ' 언니 줄리엔아저씨가 돈가져 온다니까 김밥도 먹으면 안돼?'
'안돼, 이것도 미안한데, 그냥 라면이나 먹어'
그순간에 어찌나 웃기고 어안이 벙벙하던지.
개인적으로 사람에 관계없이 뻔뻔한 성격을 매우 싫어하는지라 조금 어이가 없고 얄밉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동안 드라마에 이런 뻔뻔한(사실은 신애는 순진한거죠) 약자가 나온적이 별로 없는 거에요.
꾸준히 욕망하는대로 행동하고 원하는걸 말하고 가능만하다면 탐해보려는(그러나 곧 뭉개지지만;) 이런 약자가 있었던가요?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인 인물들은 성격도 주눅들고 미리 포기하고 은근 운명에 고분고분합니다.
사람들의 동정을 사게끔 잘 설계되어져서 화면에 등장해요. 이들은 바라는것 희망하는 것들을 위해
하니처럼 달려갈뿐 타인의 것을 탐하지는 않죠. 누구의 것도 아닌 허공에 매달린 목표를 향해 뛰어오르니까 욕먹을 일도 별로 없어요.
시청자들은 그저 아이구 불쌍해라, 그래, 네꿈을 이뤄보아요!만 연발하면 되는거거든요.

그런데 신애는 달랐어요. 그녀의 식탐이야 말로 보편적이고도 경쟁적인 욕구의 상징입니다.
물질가치와 이익다툼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가깝게는 해리와 다툼을 벌이지 않으면 식탐은 충족될 수 없어요.
아.. 다른 이의 것(고작 아이스크림, 우유한잔, 갈비한대이지만)을 간절히 원하는, 단념하지도 않는 선한 약자라니... (먹을걸 어떻게 단념하겠습니까만은!!)
  
초반의 신애와 세경이는 그런면에서 대비되는 성격을 보여줬어요.
가난하고 힘이 없으므로 눈치를 보고 원하는 것이 타인에게 있고 안될것 같으면 욕구를 숨기고 체념하고 보는,
그리고 누군가의 호의에 대해서 불편해하면서 일단은 거절하는 세경과
원하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고 안되면 슬퍼하고 눈치도 잘 안보는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또는 기회가 생기면 눈치보지 않고 덥석!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신애.
(신애가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직 어리고 순수해서였겠습니다만)

떡볶이집에서 세경도 같이 라면을 먹고 있는 엔딩이 재미났던건
그런 억눌리고 쪼그라들었던 세경이( 그날 세경이 입고 있었던 셔츠는 목부분이 얼마나 늘어난 것이었나요; 머리도 부숭부숭; 그때당시만해도 피부도 까만분장을 했어요;)
신애의 장단에 맞춰서 같이 한번쯤 뻔뻔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세경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자존심도 은근 있고,
그렇지만 신세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서라도 하나라도 더 얻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은
남에게 신세지거나 빼앗는 건 못해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 무엇이라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방어의식은 투철한, 그야말로 억척스러운 엄마새 캐릭터였는데 말이에요 .
그런 세경에게 그날 하루쯤은 신애같은 모습이 '뾰록'하고 보여서 놀랍고 재미있었어요 ^^

음...신애가 미움받았던건 약자가 눈치없이 욕망해서였겠죠.
1. 자꾸 바라기만 하면 불쌍한 언니에게 폐를 끼치니까,
2. 또는 신애가 욕망함으로써 '나'로 대치될 수 있는 타인에게 혹여나 폐를 끼치게 될까봐
3. 또는 신애에게 욕망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고 부끄럼 당하는걸 차마 보는게 괴로워서

대략 이 세가지 이유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극의 끝으로 갈수록 신애는 욕망하지 않게 되어요.
물론 혜리의 친구로 평등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기도 하고,  
'이집에서 벌써 몇개월 살았는데 아이스크림 정도 먹어도 되는거 아냐?'라고 똑부러지게 권리를 주장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게 욕망의 성취는 아니죠.
세경이 말처럼... 결국 신애는 쪼그라들어버렸어요.
분수를 아는 가난한 여자애가.. 또하나의 작은 세경이가 되어버렸네요.  
세경이가 신애때문에 이민을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눈치없이 또는 허무맹랑하게 욕망하고 욕구를 표현하려는 성격이 있는데
어째서 약자들에게만 그것이 금지되는건지...  

신애가 약간 얄미웠던 이유는 위의 1번 과 3번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고백합니다.
너때문에 고생하는 언니 속좀 썩이지마!!! 라고 세경에게 이입해서 였던 적도 있었고,
(아..세경이에게 반항하는 못된 신애어린이 에피소드는 참;; 궁딩 팡팡!하고 싶었어요)
...바라는게 있었지만 현실의 벽으로 좌절해서 상처받았던 기억으로  
어린 신애가 아파하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깜짝파티를 바라던 신애가 계속 실망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를 반복했던 그 에피소드에서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기대하지마!! ㅠ.ㅠ 너만 상처받는다고 ..신애야..' 하고
욕망하는 신애를 제어시키려던 제 마음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봤다가 좌절했던 내 자신에게 던지는  
자격지심.. 부끄러움.. 안쓰러움..이런거였을 겁니다.

그러니 신애를 잠깐이나마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참외합니닭. 흑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37664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 맥씨 916 03-22
열람 [바낭]신애라는 이름의 욕망 익명 4,044 03-22
137662 김태균 경기중 / 드디어 첫 안타! 닥터슬럼프 1,375 03-22
137661 아..정말 고민이네요. 익명 1,402 03-22
137660 노무현과 이명박의 부동산 정책 catgotmy 2,263 03-22
137659 "그것이 알고 싶다"- 검찰 로고 오류 사과 stardust 2,494 03-22
137658 밖에 눈 오네요 Needle 1,694 03-22
137657 [듀나인] 미국에서 인사돌 같은 잇몸약 어떤게 있죠? histo 1,079 03-22
137656 언 애듀케이션, 크레이지 하트 수수께끼 1,222 03-22
137655 이번 정부 인사들은 정말 한결같군요..-_- 우가 2,826 03-22
137654 디즈니의 평작들.. 뻐드렁니 2,269 03-22
137653 [스포일러] '추노' 결말 닥터슬럼프 2,784 03-22
137652 간만에 아기 사진 레옴 2,227 03-22
137651 노엘갤러거의 근황[사실은 광고] 그림니르 1,967 03-22
137650 개막장 미디어교육 대립각 1,438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