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과 '합리적인 의심'

  • 말줄임표
  •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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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직 판사가 쓴 칼럼입니다.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221992065317151125

"형사재판에서의 무죄는 유죄(guilty)가 아닌 것(not guilty)을 말할 뿐,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것(innocent)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무죄 판단은 확률상 어느 쪽의 가능성이 더 높은가에 따라 결정할 수는 없고,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 때에만 유죄를 선고하고 그러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헌법이 보장한 무죄 추정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범죄혐의를 인정해 피고인을 처벌하기 위하여는 ‘유죄의 확신’이 필요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는데 ‘합리적인 의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다음 같이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원칙은 우리만의 독특한 시각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지는 것이며 당연히 유엔, 국제인권규약, 국제형사재판소 등 국제법상으로도 확고히 지지되고 있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가지고 천안함 사건을 따져보죠.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공격에 의해서냐 아니냐는 결론은 확률상 어느 쪽의 가능성이 더 높은 가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만약 북한의 가능성을 인정함에 있어 합리적인 의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 내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정부가 제시한 증거에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증명할 책임은 그러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공격이라고 결론 내린 정부에 있는 것이지요.

정부는 어뢰 파편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고 결정적인 증거의 근거로서 조사단 발표 전문에 따르면 북한 수출용 팜플렛과 파편 표면에 적힌 1번이라는 글자를 제시했습니다. 이 것으로 '합리적 의심'은 제거 되었나요? 정부 발표의 수많은 문제점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으니 새삼스레 제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으나 팜플렛 문제만 한번 따져 봐도 합리적 의심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그 팜플렛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그런 팜플렛이 우리 정보원에 입수 되었고 입수 된 팜플렛에 실려있다는 설계도와 사고지역에서 발견된 어뢰 파편이 일치한다는 발표만이 있었을 뿐이지요.

팜플렛이 입수되었다면 그것을 제공한 자와 제공 받은 자를 신뢰할 수 있는지 검토되어야 하고 또 설사 관련자들을 신뢰할 수 있더라도 해당 팜플렛이 정말 북한의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 작업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부는 이런 의혹을 제기하면 그럼 정부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거냐며 정부 발표를 불신하면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데 이게 얼마나 황당한 태도인지 모르나 봅니다. 검사가 재판정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확신이 들 정도의 증거를 제시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나 대한민국 검사야. 나 못 믿어? 내가 조작할 것같애?' 이 따위의 말들만 늘어 놓는다면 그 검사가 어디 제 정신이겠습니까? 동네 좀도둑을 기소할 때도 이렇게는 안하죠. 나중에 정부에서 객관적인 증거들을 공개하면 어떻게하려고 성급히 조사단 발표를 불신하느냐고 하는데 이건 선후가 바뀐겁니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공개되면 그 때 가서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하면 되는 거지요. 그 전까지는 북한의 소행이 아닌 겁니다.

마침 경향신문의 사설에 재밌는 표현이 있더군요.

"명백한 물증이 나왔으니 잔소리 말라는 뜻이라면 지나친 단순논리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성서의 말은 종교적 신앙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많은 일상적 인간사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거쳐야 진정한 신뢰가 이뤄진다."

정부의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면 어떤 의혹이든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 이들은 경향신문의 표현 처럼 이미 종교적 신앙의 영역에 가있는 것같습니다. 이 신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대열에 조중동은 물론이고 평소에 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도 일부 동참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느껴질 따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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