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식시장이 망가지고 있는 이유 - 햇볕정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오늘 코스피 폭락은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1시 25분 현재, 코스피는 1539으로 전일보다 65포인트가 하락했습니다. 이렇게 4% 넘게 하락한 것은 어제밤 스페인에서 일어난 지방은행 국유화 사태도 관련이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남북한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실험을 해도 끄덕이 없던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는 데는 다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지금까지 남북한의 관계를 사실상 규정지었던 경제협력의 틀을 깨버리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 년동안 북한의 핵실험 같은 이벤트에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매우 평안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 반응의 이면에는 근저에 깔린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온 사실이 있습니다. 북한 경제의 남한 경제에 대한 예속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해왔기 때문입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둘 사이의 군사적 긴장관계는 감소할 수 밖에 없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의 경제적 붕괴가 시작된 것은 92년부터였습니다. 92년은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주변국 누구도 독일의 통일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의 통일은 급격히 이루어졌습니다. 92년부터 98년까지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이행 경제(transition economy)의 상황에서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의 개혁과 개방에 자신들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갔죠. 개방 대신 폐쇄를 택한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전무후무한 가뭄과 기근이 강타하면서 21세기를 앞둔 북한은 참혹한 내핍의 시대를 겪어야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이 회복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였습니다. 최악의 기근이 끝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99년부터 회복을 시작한 북한은 2008년에야 비로서 98년의 경제수준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북한을 아주 천천히이기는 하지만 개방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원칙을 이어 받았습니다.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경제적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깊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흘렀던 남북한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보수 정치인들은 햇볕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햇볕정책 이후, 경제적으로는 개성공단을 시작한 이후, 북한 경제는 남한경제에 상당히 종속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종속을 유발한 근본적 힘은 남한의 자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이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끔찍하게 낮은 편은 아닙니다. 최근 20년 동안 급성장한 중국과 비교하면 1/3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8년 기준 약 1100불 정도로 인도,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적 궁핍이 심각한 이유는 국방비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약 25% 정도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3%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높습니다. 경제규모가 30배 가까이 큰 남한의 국방비 규모를 따라가기 위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국방비 격차는 이미 5배가 넘습니다.
경제규모가 30배, 국방비 격차가 5배 이상 차이 나는 나라와 군사경쟁을 계속 하면, 그 말로는 뻔합니다. 한쪽은 사생결단 하듯 먹을 것 대신에 총을 들어야 하지만, 한쪽은 지갑에서 약간의 돈을 지출하는 데 불과하다면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한쪽은 배도 곯고 나라도 지킬 수 없지요.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갑을 늘리던지, 국방비를 줄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느 쪽이든 북한은 이미 받고 있는 남한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합니다.
북한 경제가 남한에 이미 상당부분 종속되었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구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북한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는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최대 수출국은 2007년을 기점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바뀌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전체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이 20%가 넘고, 남한으로의 수출에서 개성공단의 비중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입니다. 개성공단은 비록 정부가 투자금액의 상당부분(약 80%)을 보증해주긴 하지만, 남한 기업들의 투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산업 단지입니다.
남한 기업들이 왜 북한처럼 정치적 위험이 높은 곳에 기업을 투자할까? 물론, 기업인들의 선의가 이유중의 하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노동력이 질이 좋은 반면 아주 싸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이 북한 주민에게 지급하는 평균임금은 월 70불~250불 정도인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10배 정도 쌉니다. 북한 주민들의 교육 수준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서 높은 편이고, 의사 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교육을 통한 학습 속도도 굉장히 빠릅니다. 이런 북한 노동자들의 높은 생산성 때문에, 남한 기업들로서는 북한의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유인이 존재합니다.
최근 남북한 간에 흐르는 정치적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의 기업들을 쫓아내는 것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자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단지를 폐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개성공단을 스스로 폐쇄하고, 남한 기업들을 철수시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성공단은 남한 기업들이 투자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이죠. 남한 정부가 이들 기업들을 철수 시키려려면 상당한 재정적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만약, 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경색시키려 한다면, 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수구 세력들은 햇볕 정책이 퍼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금융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그건 "퍼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퍼오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그냥 쉬운 말로 바꾸자면, 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러운 정책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김정일에게 벗어나고 싶은 북한 주민들이나, 북한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싫은 남한의 우파 정치인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사실 남한의 저소득 노동자들입니다. 북한 붕괴의 충격에 대비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북한 붕괴와 동시에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은 대부분의 평범한 남한 중산층이죠. 그럼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그런 대북정책은 없을까?
그런 정책은 세상에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 통일이나 그에 준하는 상태가 멀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은 순전히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관계에 주목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의 시작은 두 쪽 모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