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현경을 비롯한 순재네 가족들에 대한 시선이 인상적인 글이라 퍼왔어요.
이렇게 계속 이야기할 거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 같습니다.
물론 그동안 지붕킥을 보면서 웃고 씁쓸해하고 의아해하고 실망하고 울컥했던,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들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전문은 여기로 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http://minoci.net/1086
해리를 위하여 : 지붕킥 엔딩 단상
2010/03/22 15:36Posted by 민노씨 Posted in " 창조자들 "
#. 지상파에서 방영된 인기 시트콤이라는 특성상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연예저널들에서 이미 독후감식 기사들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안봐도 비디오라서리...). 스포일러의 불안을 느끼시는 분들은 이 글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술의 종국에는 선이 악에 대해 승리한다고 약속한다면, 그러한 약속은 역사적 진실에 의해 반박될 것이다. 현실에 있어 승리하는 것은 악이고, 그곳에는 단지 어떤 사람이 잠시 동안만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선의 외로운 섬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이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만든 약속을 거부한다. 그들은 헤피엔드를 거절한다.(52)
비극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고, 비극의 신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다. 기쁨은 슬픔보다는 빠르게 사라진다. (60)
- H. 마르쿠제, [미학의 차원]('The Aesthetic Dimension', Beacon Press : Boston, 1978), 청하 : 서울, 1983. 중에서
1. "김병욱 미친거 아냐?"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슬픔으로 마무리된다. 여느 멜러드라마의 결론이라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이 엔딩은, 그동안 지붕킥을 꾸준히 시청했을 시청자들에게는, 그리고 김병욱PD의 전력을 고려하더라도, 파격적인 결론이다. 지붕킥은 수목 멜러드라마가 아니니까. 이것은 일일시트콤이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나서, 혹은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저 하루의 피곤을 웃음과 함께 날려보내는, 가족들과 함께 보는 지상파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지붕킥은 그런 시청자들의 관습적 기대를, 시트콤이 갖는 현실의 수면제로서의 정치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배반한다. 이 결론은 확실히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