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속에 남은 희망이라는 것..
신화에 따르면, 판도라가 궁금해 했던 상자 속에는 인간을 괴롭히는 각종 재액들이 들어 있었다지요. 그리고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여는 바람에 각종 질병, 가난, 질투, 공포, 불행 따위가 튀어나와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자 가장 아래에는 '희망'이 남아있었고, 이 '희망' 덕분에 인간들은 수많은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들..제가 읽어왔던 신화 관련 서적들에서는 풀이를 하더군요. 이게 전통적인 해석인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책에서는, 이 신화 속에서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 원흉이 판도라라는 '여성'이라고 묘사했다는 것이 신화, 종교속에 굳건히 뿌리 내린 여성 혐오의 단면이라는 지적을 하면서, 이 신화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즉, 인류에게 재앙인 각종 악한 것 들이 가득 찬 상자 속에 왜 가장 고귀하고 선한 '희망'이 섞여 있었냐..말이 안된다!는 것이었죠. 그 책에서는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해방된 각종 '재앙'들이 사실은 '좋은 것'이었고 그게 후세에 나쁜 것으로 바뀌었다는 식의 해석을 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혹시 아시는 분 제보 좀.) 하여간 요지는 한 상자 안에 좋은 것이면 좋은 것, 나쁜 것이면 나쁜 것만 있는게 정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깐 주장이었지요. 그리고 희망이 나쁜 것일 리는 없으니 앞에서 해방이 된 것들도 좋은 것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을테고..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따르면, 희망이 나쁜 것, 악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희망이라는 것이 지금보다는 좋아질 장미빛 미래를 바라보며 시궁창 같은 현실을 이 악물고 버티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아편 같은 것으로 쓰여질 때는요. 모든 의식은 지금 여기와는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아직 오지 않은 '이상적인 미래'에 가 있고, 현실은 지금 여기와 나중 그곳 사이의 '갭'을 하루 빨리 좁히기 위해 맹렬히 달려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도록 '희망'이 만들어 낼 때, 그럼으로 현실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며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 때, 희망은 어쩌면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교묘한 형태의 악이 될지도 모르지요. 매 순간 지금의 내 모습과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 사이의 괴리를 느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빨리 좁혀야 한다는 조바심에 발버둥치고, 그래서 현재에 충분히 존재하지 못한 채 현재가 그저 미래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쓰여진다면..이런 삶은 그것 자체로 재앙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삶을 만드는 '희망'이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테고요.
제 스승님이 저에게 그러셨어요. "매 순간순간 즐거워야 해.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니가 무엇을 이루어내더라도, 설사 그것이 진정 네가 원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가는 순간순간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결국 좋지 않은 것이야."
당시에는 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건 누가 모르나. 좋은 이야기야. 성공한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하지만 모든 과정들, 준비들이 즐거운 것은 아니지 않나. 아니, 사실 대부분 괴롭고 지루한 일이지만, 목표를 위해 하기 싫은 것도 꾹 참고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 사실 사실 세상일 들 중 거의 대부분은 이런 일이잖은가. 그리고 난 이런 식의 '참고 인내심가지고 하기 싫은 것 성실하게 하는 것'을 못 해서 그걸 고치고 싶어하는건데...
그런데 지금은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분이 저에게 무슨 충고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기 싫은 것이지만 기왕 해야 하는 것이니 좋게 마음을 고쳐먹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식으로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사실 이것만 해도 정말 좋은 태도지만..)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온 존재로 살아서 깨어 있으면서 그 과정 하나 하나를 오롯하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그분이 말씀하셨던 '매 순간 즐거워야 한다'는 의미이겠죠.
저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제 매일의 시간 속에, 이렇게 깨어서 온 존재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들이 갈 수록 더 길어졌으면 해요. 그래서 삶의 매 순간 마다 살아있음을 절감하며 생동감 있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