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 익명
  •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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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 금요일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분명히 아버지는 위독하셨지만 - 귀만 열려있지, 눈도 감으셨고, 꼼짝도 못하고 물도 못삼키는 상태-
저는 이런 상태에서도 몇번이나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아야 돌아가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에이, 최소 몇년은 더 사실거야 라며 서울에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을 하고 오전에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울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둘째오빠의 '아버지 돌아가셨다'라는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옆에서 통곡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믿기 힘들어서 30분을 망연자실해 있다가,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장례를 치르고
재산 및 채무관계를 알아보고 오늘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요.


2. 오빠가 3명인데 2명이 사업을 하고, 아버지의 전폭적인 자금지원을 받았던 큰 오빠는 IMF때 부도가 났어요. 그리고 덩달아 우리집에 채무가 생겼습니다. 공무원 월급으로 생활하던 아버지는 원금은 커녕 이자도 못내서 쩔쩔 맸습니다. 결국 이자 돌려막기 하다가 남은 예적금도 다 날리고, 원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그 스트레스로 '별 쓸데없는 염증'하나가 치료가 안되어서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채무가 도대체 얼마인지 궁금해서 금융기관 다 돌아다니면서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채무는 적었습니다. 어차피 어머니와 제가 알던 범위에서 크게 차이가 안났어요. 고작 이거때문에 그토록 어머니와 저에게 꽁꽁 숨겼나, 예적금 거래내역 조작까지 하며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셨나 싶어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예적금을 다 날릴때까지 내버려두지는 않았을텐데, 이자 돌려막기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텐데 싶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허탈했습니다.


3. 처음에 사소한 염증이 생겼을 때, 백원이라도 아끼려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난리를 치고 병원에 가라고 해도 안가셨다고. 1년 전 처음 입원을 했을 때 제가 회사에서 병원비 지원이 되는데 왜 병원에 안가셨냐고 울면서 이제 앞으로 아프면 병원다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위독하다고 연락받으면서 둘째 오빠가 병원비를 절보고 내라고 했을때, 저는 그야말로 진상을 떨었습니다. 회사에서 일부 지원이 되지만, 나머지 금액을 내줄 형제는 없고 결국 제가 또 백만원 이상을 부담하게 될터인데. 무통주사며 알부민이며 다 소용없는거 알면서 나 하나 직장 제대로 다닌다고 그렇게 오빠 마음대로 막 써대냐고 전화로 퍼부었습니다. 앞으로 무통주사며 알부민 절대 놓지말라고 난리쳤습니다. 오빠는 힘없이 '아버지가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거 보면 너도 안놓고는 못배길꺼다. 내가 그 돈 줄께'라고 했지만 저는 더 독하게 '그게 얼마짜린데 절대 놓지말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 전에도 독한 말을 엄청나게 했어요. 돈때문에요.



4. 금요일에 시골에 가면서 남편에게 쉴새없이 떠들었습니다. 오빠들때문에 아버지가 돈 하나도 못모았다. 그렇게 청렴하고 일 잘하시고 그렇게 잘 나갔는데.. 오빠들이 너무 밉다.

남편이 '이제 와서 백억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사실 다 필요없지요. 그냥 행복하게만 사셨더라면. 아버지가 언제 행복해하셨는지, 언제 웃으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5. 장례식장에서도 별로 울지 않았습니다.
다만, 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그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이 다 끝났으니 편안히 가세요'라는 생각에 일어설 수도 없을만큼 울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또 실감이 안납니다. 다만, 잠이 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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