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라는 이름 석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진상폭로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던 안상수 원내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할 말은 하는 인물이었다.
1965년에는 한일회담 문제로 9일간 단식을 했고, 1967년에는 6·8 부정선거규탄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폭로한 이후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안상수 원내대표는 1991년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경실련 입법위원,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992년 경향신문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했고, 한겨레 시평을 게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