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올립니다.
오늘 폭풍전야 무대인사도 있다고 해서 대한극장을 찾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배우들과 감독을 볼 수 있어 좋은 기회였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나쁜 평을 많이 들으셨는지, 다들 소심한 멘트를 연이어 날리시더군요.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그래도 배우들은 열심히 했다...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등등.
뭐, 덕분에 안그래도 많지 않던 기대치를 최소한으로 낮추고 관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1. 영화는 전경린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와 휘몰아치는 바람과 고립된 레스토랑과 같은 배경.
마치 감성적인 묘사들이 가득 찬 문장의 향연같은, 환상적인 소설을 실사화한 듯한 느낌.
하지만 그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대사들이 어색했습니다.
연극체라고 하기도 민망한, 책을 읽는 듯한 문어체 대사들은
그나마 김남길의 성우 목소리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인데
안 그래도 명연이라고는 하기 힘든 나머지 배우들 연기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데 일조했고요.
진지한 부분에서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그 어색함이 상당히 웃겨요. 그게 의도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저는 이게 점점 무국적이 되어가는 영화계의 현실과 연계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어색한 대사들을 영어로 번역하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2. 전 영화 설정은 좋았습니다.
에이즈, 동성애, 강간, 불륜, 탈옥 등등의 온갖 극단적 요소들이 마구 뒤섞여서
그게 영화의 조용한 분위기 아래에서 휘몰아치고 있다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제목과도 잘 어울렸고요.
그런데... 뭔가 아쉽습니다. 영화가 그 가능성을 전부 다 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뭔가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중간에 어느 선에서 타협을 봐버린 느낌이랄까요.
그 타협이 이 영화를 어정쩡한 곳에서 표류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신경쓴 게 분명한 몇몇 마술 장면들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네요.
3.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배우들의 감정선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인과 미아처럼 격정적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레스토랑 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조용하게 이끌리게 되는지, 사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어요.
두 사람에게 보다 분명한 캐릭터를 주었어도 좋았을 거란 느낌입니다. 특히 미아요.
스포라서 말하긴 그렇지만, 미아는 그렇게나 극단적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하던 사람인데,
왜 중간부터 흩날리는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며 말없이 눈을 내리까는
클리셰적인 휴양지 여성이 되어버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4. 스크린에서 김남길은 분명 같은 인물인데도 매 장면 변하더군요.
정말 변화무쌍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 되도록 많은 역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인물로 다시 태어날지 기대가 됩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괜찮았습니다.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줬고요.
마지막 장면 하나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영화를 보러 가는 기분이 아니라
소극장에서 열리는 저예산 연극을 보러 가는 기분으로 가시는 게 좋을 거에요.
그리고 모두의 소감, 예고편이 낚시였다는 말에는 저도 깊이 동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