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과 한국 경제

  • hubris
  •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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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프라임 위기가 사라진 후, 세상에는 몇 가지 논쟁이 있었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린 버낸키(Bernanke)의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이는 위기관리 대책은 과연 지속적인 미국경제의 회복을 가져올 것인가? 루비니(Roubini)나 크루그만(Krugman)을 포함해서 골드만 삭스까지 미국의 경기반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국가재정위기 사태들이 터지면서 그런 시각들이 옳은 듯 해보였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위기 사태는 보통 위기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 재정이 건강하지 않은 나라들이 무리한 재정을 쓴 결과이기 때문이죠.

숫자 상의 미국 경제는 아주 좋아 보입니다. 지난 주에 발표된 고용지표들은 비록 2월의 가혹했던 한파와 폭설 그리고 일시적인 인구조사(census) 고용이 반영된 듯 하지만, 163,000건의 고용창출을 기록했습니다. 1, 2, 3월의 평균적인 고용증가는 이미 6개월 정도 경기에 후행적인 고용시장의 회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분기의 미국 경제는 2.5% 이상 성장할 것 같고, 2분기 미국 경제도 3.5%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대가들이 더블 딥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것이지, 더블 딥이 될 것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금융위기가 전례없이 혹독했기 때문에, 미국의 건강한 반등을 기대하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겁니다.

미국 연준은 점차 이전에 썼던 예외적인 부양정책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은 이미 쓰고 있는 상태입니다. 3월 말로 예정되었던, MBS 매입 정책도 예정대로 끝났고, 지준에 이자를 부과하지 않는 정책도 이제 끝냈습니다. 궁극으로는 연준은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빨리, 하지만 응당 해야 하는 시점보다는 늦게, 금리인상을 시작할 것입니다. 늦게 시작하는 대신 금리인상은 상당히 빠르고 공격적일 겁니다. 이미 미국채 시장은 그런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경제 지표의 회복만 보면, 아주 좋아 보입니다. 거의 모든 지표들은 전년동월대비해서 개선된 2월의 산업생산 지표만 봐도, 당장 금리를 인상해도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금리인상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 안으로 금리인상은 불가능할 듯 보입니다.

우선, 이명박이 작년 G20에서 제시했던 글로벌 정책 공조에 대해서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이 앞서 말을 바꾸기는 어려운 입장입니다. 설령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느다고 해도 말이죠. 이명박은 그런 "가오"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11월에 예정된 G20 정상회담의 개최지가 서울인데, 그 때 우리가 먼저 금리를 올리고, 재정을 축소해서 정책공조를 깼다면, 정상회담의 주최자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영 자세가 나오지 않겠죠. 게다가, 선거도 기다리는 마당에 굳이 금리를 올려서 사람들의 정서를 나쁘게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 금리는 10년 국채 금리가 4%를 건드리고 16개월 내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한국의 3년 국고채 금리는 3.85%까지 빠졌습니다. 3개월 전 금리가 4.3%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무려 50비피 가까이 금리가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단지, 한국 은행이 이명박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런 요인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본질은 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금리가 빠진 이유, 특히 1년처럼 짧은 채권에 많은 수요가 몰린 이유는 시중에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채권을 사는 데 쓰인 이런 돈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전망한 외국인 투자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수요축은 은행이었습니다. 예금은 많고, 대출은 적어진 은행은 늘어난 유동성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채권을 사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금은 늘어나고 대출은 줄어들었을까? 우선, 정부가 은행들로 하여금 예대비율을 축소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동안 150%까지 늘어났던 예대비율을 4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100%까지 줄이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기위한 (바람직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시적 조치로 인해서 대출 공급이 줄었다기 보다는, 대출은 수요측에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이미 많은 대출을 안고 집을 산 상태입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DTI 규제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2%인 한국은행의 정책 금리하에서는 향후 금리가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대출을 꺼리는 것도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게 되면 이자부담이 커지고, 집값은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지요.

최근의 집값 추이를 보면,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리 많은 가격 조정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강남 반포의 경우, 집값이 급락했지만, 정부와 한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을 투입하면서, 집값은 다시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강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집값 반등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큰 폭의 하락 후, 반등 후에 bankertrust님이 여러차례 언급한 것처럼, 전세와 집값 간의 가격차의 축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 사이의 가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강남 집의 효용은 누리길 원하지만(전세로 다 누릴 수 있죠), 그 집을 사기는 꺼려한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집을 파려면 큰 폭으로 낮춰서 팔아야만 가능하지만, 또 막상 사려면 거의 호가가 사라져 살 수도 없는 게 현재의 강남 집값입니다. 강남을 제외한 다른 곳의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 집값 대폭락의 전조일까?

저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글로벌 경제의 환경 변화와 몇번의 정책 실패가 가미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은행이 쓸 수 있는 정책금리는 2%에 불과하고, 0%까지 내려도, 2%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통화정책의 수단이 제한될 때는, 재정정책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미 시작해버린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책은 그럴 여지를 점점 줄이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DTI 제한 완화, 양도세 페지, 재개발 규제 폐지와 같은 미시적 정책입니다. 만약, 그런 미시적 정책이 제대로 된 시점에서도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 부동산 시장은 아주 어렵게 될 겁니다. 떨어지는 가격을 받아줄 사람이 없게 될 테니까요.

만약, 아주 운이 좋으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우리나라의 소득 증가로 집이 없는 계층이 집을 사려고 하면서(아직 우리의 자가소유비율은 낮은 편입니다) 선순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높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이유는 미국이나 다른 세계 경제가 어쩔 수 없이 내년이 되면, 연준의 금리인상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2003년에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자산시장이 크게 하락한 적 있는데, 이는 중국의 통화가 달러에 페그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인한 유동성 축소를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연준이 금리인상이 시작되면,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지금 배럴당 86불 까지 오른 원유가격이 계속 올라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해지면, 우리는 진퇴양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진퇴양란에서 선택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자산가격이겠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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