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그리고 블랙 호크 다운
아래 글은, 예전에 제 선배가 모처에 기고할 요량으로 썼던 원고인데
그 당시 그 선배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며 (노동력 착취...) 제가 갖고 있던 원고입니다.
최근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이 빈번한 이유가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공권력이 없어서일 텐데,
사실 소말리아라는 나라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군벌들은 난리를 피웠고 유엔군은 꽤 무력했죠.
그 일련의 막장질 과정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건이, 아마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체포작전 중의
블랙 호크 추락사건일 텐데.... 국내 개봉 영화로도 나와서 다들 보셨겠지만 (올랜도 블룸....
레골라스가 한때는 미군 군바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죠) 원래는 논픽션 원작입니다.
#0. 들어가며.
지금부터 쓰려 하는 이야기는 요즘 막 개봉하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회자되는 그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봉 훨씬 이전에 출간되어 본토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호평받았던 한 논픽션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 영화에선 어쩔 수 없이 다루지 못했던 후일담이나 그 '묻혀졌던'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1. 사건의 전말.....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3년 10월3일 오후 3시. 레인저를 태운 블랙호크(정확히는 각종 센서를 강화한 특공대용 패이브 호크)4대와 델타포스 팀을 태운 리틀버드 4대, 같은 수의 호송및 지상제압 리틀버드 - 도합 12대의 헬기들은 한가로운 오후의 인도양을 가로질러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의 일명 '검은 바다 구역'을 향해 돌입한다.
유엔의 대의에 반발한 채 계속 저항하며, 유엔의 원활한 식량공급을 막고 다른 소수파 민족을 억압하는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장군'의 참모진을, 그들의 세력권에 직접 강습해 들어가 체포하는 것이 이들의 주 임무였다. 어디로 보나 지극히 정당한 작전이었다고 투입되는 병사들은 이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비슷한 작전이 이전에도 몇 건 있었고 비록 애꿎은 민간인의 피해가 소수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성공했으며, 어차피 토착 군벌의 사병 따위는 정예 '델타포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작전은 1시간 이상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고, 그들이 체포작업을 하는 동안 외곽을 경계하는 레인저들은 장갑화된 험비를 타고 육로로 오는 또 다른 그들의 동료와 합류, 체포된 참모를 싣고 유유히 모가디슈 외곽의 미 주둔군 본부에 도착하면 작전은 종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하늘에선 P-3 대잠초계기를 개조한 전자정찰기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휘본부로 실시간 전송시키는 상황이었다. 물론 만약이란 사태를 상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경우, "그들은 전투에선 승리할지언정 전략적으로는 패할 것"이란 경고는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그 만약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작전은 순조로웠고 목표물은 모두 손쉽게 제압되었다. 레펠 중 추락사고가 일어나 한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어떻게 응급후송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미군으로서는 악몽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 소말리아의 하늘에선 무적이나 다름없던 블랙호크가 조악한 로켓탄에 피격, 추락하고(후미의 테일 로우터를 직격했다) 어디선가 벌때처럼 몰려온 군중과 그속에 숨은 아이디드의 사병들 한복판에서 호송대는 고립당한다.
쏟아지는 총탄과 로켓탄 - . 완전히 도시 전체가 작심한 듯 들고 일어난 치열한 저항 속에 레인저들과 델타포스는 고립되고, 추락한 헬기 승무원을 구하기 위해 새로 돌입한 델타포스 대원조차 압도적인 수적 열세 하에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그 와중에도 장갑험비로 이루어진 호송대는 체포대상을 천신만고 끝에 본부까지 실어와 인계, 애초에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고 재차 지옥같은 도심으로 재진입하지만, 돌발사태에 따른 혼란으로 믿었던 항공통제관들은 오보를 연발하고, 결국 남은 고립병력을 구출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리고 작전 개시로부터 18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도시 전체가 적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알라모 요새의 사람들처럼 민병대와 처절하게 싸우던 레인저와 델타포스는 마침내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유엔의 다국적 임무부대와 미군 제10산악사단 병력에게 구출되지만, 이미 18명이 전사하고 70여명 이상이 중상을 입은 후였다.
소말리아측의 피해는 상당수의 민간인을 합쳐 최소 사상자 1000명 이상. 분노한 군중은 미처 구출부대에게 회수되지 못한 미군들의 시신을 난도질하고 끌고 다녔다. 이 모습은 외신에 중계되었고 분노한 클린턴 행정부는 작전책임자 경질과 함께 미군의 조속한 단계적 철수를 명한다. 결국 이 작전에 투입된 미군은, 작전입안 이전의 경고대로 전술적으로는 승리했으나 전략적으로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2.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하의 사건의 전말에 대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큰 의문을 품을 것이다. 왜 기아에 신음하던 그들을 도우러 온 미군들을 소말리아의 민중들 전체가 벌떼처럼 몰려와 저항하고 그들의 시체를 끌고 다녔는가? 거기에다 엄청난 민간인의 피해까지.......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2시간 2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의 한계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자세한 배경은 설명하지 못했고 오직 처절한 전투씬과 그 와중의 미군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근래 테러공격 이후 고조되고 있는 미국중심주의의 선전물에 불과하다며 이 영화를 혹평하고, 영화에서 소말리아의 인간들은 인간이 아닌 시커먼 파도에 불과했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 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고용한 소년병 민병대였으며, 아이디드가 뿌힌 마약성분이 있는 환각제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환각에 취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논하고 있는 '논픽션'의 저자 마크 보우든은 그 배경의 설명에 대해서도 미흡하나 최선을 다했고, 소말리아인들 당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뷰를 통해 중론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의 글을 근거로 할 때, 근본적으로 미군과 다국적군이 투입되게까지 한 소말리아의 기근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되려 부족간의 싸움이 초래한 인재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수십여년간 철권통치를 한 독재정권이 쿠데타(바로 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주도한...)에 붕괴되고, 그 동안 억압되던 각 부족의 갈등이 촉발된 90년대 초의 소말리아는 어지러운 내전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국가의 생산 유통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각지에 할거한 군벌들은 중화기들이 전투 중에 거의 소모된 시점에서 서로 상대편으로 갈 식량을 차단시키는 것을 무기로 하였다. 결국 기근이 초래되었고 한해에만 수십만 명이 굶어죽었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기아의 원인중 가장 큰 것은 누가 뭐래도 내전이란 것이다. 과거의 비아프라, 이디오피아에서 발생한 기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은 각지의 외신에 대대적으로 중계되었고, 국제사회의 온정어린 원조가 도착했으나 군벌들은 이마저 탈취, 사욕을 채웠다. 기근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걸프전의 승리로 기고만장했던 집권 말기의 부시(씨니어) 행정부는 냉전 종결 직후 미국의 새로운 위상 '세계의 경찰'을 시험해보기 위해 '희망회복 작전'이란 이름 하에 다시 다국적군을 편성, 소말리아의 치안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감행했다.
뒷감당의 걱정도 필요 없었다. 뒷감당은 곧 정권을 인수받을 클린턴 행정부가 맡을 것이다. 그리고 중무장한 미 해병대가 상륙했다. 코브라 공격헬기와 각종 장갑차를 앞세운 미군과 다국적군 세력에게 군벌들은 놀라울 만치 고분고분했고 곧 평화가 오는 듯 했다. 부시는 만족했고 소수의 치안 유지를 위한 특수부대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주력인 미해병대는 중화기와 함께 철수해버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분고분하던 군벌들이 다시 식량을 약탈하고 세력다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뒤를 이은 클린턴 정권이 추진중인 소말리아의 신정부 수립구상은, 여러 부족들의 권력을 균등하게 나누는 게 골자였으나, 전 정권을 무너뜨리고 최대세력권을 자랑하던 "하브지디르" 부족의 수장 아이디드는 유엔과 남겨진 다국적군에게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던 것이다.
유엔과 미국의 정책에 대한 그들의 첫 대답은 그들 군벌의 무장해제를 실시하고 있던 "유엔군 소속" 파키스탄 병사들 24명을 무참히 참살시킨 것이었다. 이어 아이디드의 민병대들은 파키스탄군 시체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잡어 낸 채 질질 끌고 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소말리아의 민중들에게 "미국이 이교도의 신앙을 퍼트려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려 한다"는 악선전을 펼치면서 유엔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무슬림의 나라 파키스탄이 과연 그들에게 이교도의 신앙이었던가?)
이러한 상황에서 모가디슈의 유엔 최고위직에 있던 "조나산 하우" 제독은 명백한 위험 인물인 아이디드의 제거를 결심했고 휘하의 특수부대들을 이용한 아이디드의 심복 체포작전을 감행했다. 수회의 공중강습이 실시되었고 또한 성공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아이디드와 그의 참모 둘을 제외하고서....
이러한 아이디드 군벌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 아이디드 군벌 자신도 손가락만 빨 순 없었다. 그러나 긴 내전으로 중화기를 완전 소모한 지금, 미군의 헬기를 격추시킬 수단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이웃 수단에 주둔하던 아프간 전쟁출신의 게릴라들이 고문을 자처하고 그들이 구 소련군의 헬기를 간단한 로켓 발사기로 격추할 때 쓰던 노하우를 전수한 것이었다. (지금 추측해보건대 - 여러 뉴스와 외신을 조합할 때 - 이들 게릴라는 당시 수단에 은거하던 '빈 라덴'의 수하일 가능성이 높다. 웃기는 건 이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들 게릴라의 지도가 북한에서 파견된 군사고문단이란 주장도 있는데, 탈북 군관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이 북으로 복귀한 후 자신의 전공을 자랑스러워했다는 증언이 있다.)
어쨌든 이렇게 아이디드 측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을 무렵, 미국은 아이디드의 최중요 심복 2명의 소재를 파악하고 다시 그들을 체포하는 공중강습을 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게릴라의 조악한 로켓포에 최첨단 페이브 호크기가 격추당하는, 그래서 미군의 상황실에서 저주스러운 파동으로 울려퍼지는 "블랙 호크 다운!" 이란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 아이디드의 악선전에 고무되고, 거기에다 작전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민간인의 피해에 분노한 소말리아 민중들까지 여기에 가세하였고... 그 처참한 결과는 먼저 언급한 바와 같다.
#3. '블랙호크 다운' 그 이후
'작전'은 영화에서 표현된 대로 처참한 희생으로 마무리되었다. 막대한 숫자의 소말리아 민간인의 피해와, 추락 헬기 조종사의 시신이 분노한 군중의 손에 시장 바닥을 질질 끌려 다니며 유린되는 장면이 외신을 통해 생중계 되는 모습은 집권 초기의 클린턴 행정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과거 케네디 시절의 '피그스 만 사건'처럼 군부가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것으로 여겼고 분노했다. 하필 당시 클린턴은 러시아에서 벌어지던 옐친의 반대파 쿠데타 진압에 관한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국방장관 에스핀은 사임하고 작전 책임자 게리슨 소장은 군복을 벗어야 했다. 다시 중화기(전차와 장갑차)가 소말리아에 투입되어 치안을 회복시켰지만, 이는 미군의 '영광스러운 철수'를 위한 초석일 뿐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로선 애초에 기아에 빠지고 내전과 무정부상태의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는 소말리아 민중을 긍휼하기 위한 미국의 행동이, 되려 민중들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히는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시바삐 손을 떼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미군의 전술에도 대대적 손질이 가해졌다. 작전 중 발생한 미군측의 인명피해의 원인은 대부분 시가전 상황에서 그들을 보호할 적절한 장갑차량이 없었기 때문이란 결론이 나왔다. 거기에 유고내전의 전훈까지 이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냉전당시 구 소련의 대규모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M-1A1전차나 M-2브레들리 장갑차는 이런 내전국가의 신속대응군용으론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서 당초에 미국이 전차를 배치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재빨리 운송되어 적대세력을 시가전에서 제압 치안을 회복할 수 있는 비교적 경량의 장륜장갑차 부대가 요구되었고, 이것은 작년도에 본격 제창된 '에릭 신세키' 참모총장의 신개념 기동여단 플랜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건의 당사국이요, 제일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소말리아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론적으로 그들은 역시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말리아인들 그 중에도 미군에 대한 저항의 주체였던 하브지디르 부족은 사건이 벌어졌던 10월 3일을 제멋대로 국경일로 정했지만, 이미 국가조직 자체가 사라진 소말리아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라며 논픽션의 저자 마크 보우든은 고소(苦笑)를 짓고 있다.
비록 아이디드와 하브지디르 부족은 타 세력에 대한 자신들의 독주와 우월권을 미국과 유엔의 침범으로부터 지켰지만, 국제사회는 그들의 내전과 기아 문제에 완전히 등을 돌렸고, 타 부족과의 내전은 재발하였다. 그 와중에 그 '아이디드'도 암살당했다. 차라리 그로선 그 때 체포되어 미군에 의해 연금당하는 것이 결과론적으로는 좀 더 목숨을 부지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소말리아는 지금 현재 완전히 다국적군 개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내전과 기아로 인한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이젠 그것을 집계할 공신력있는 조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여기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왜 그들(소말리아인들)은 국제사회의 구호의 손길조차 뿌리친 체 이 같은 결과를 자초했는가? 그들은 미국과 다국적군이 그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나? 그들은 안정과 평화를 원치 않았던 것인가?
이에 대해선, 앞서도 설명하였지만 외부인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갭이 큰, 알려지지 않은 팩트가 많다. 일단 미군에 대해 저항했던 소말리아인들은 내전 중 가장 큰 기득권을 가진 하브지디르 부족이었고, 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은 그들의 세력권 한복판이었다. 어차피 기아가 다수파 부족의 상대 부족 견제수단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재' 인 마당에 그들로선 다국적군에 의한 평화유지보단 그들의 기득권유지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아프리카 특유의 고질적인 부족 전쟁문화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이 있다. 저자 마크 보우든과 인터뷰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gks 미국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사건이 미국의 모든 중요정책에 대해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미국의 견해는 '사악한 국가' = 「깡패같은 지도자가 고상하고 선량한 국민을 억압하는 곳」' 이란 것이었습니다. 소말리아가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전 국민이 악에 받쳐 대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의 노파를 붙잡고 물어 보십시오. 평화를 원하냐고... 그러면 노파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답할 겁니다. 질문을 바꿔, 그렇다면 평화를 위해 상대편 부족과 권력을 공유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노파는 정색하며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그 살인자, 도둑들 말이오? 차라리 내가 죽고 말겠소.'
요컨대 그런 나라 사람들 - 대표적인 예로 보스니아 -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항구적인 권력을 원할 뿐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말이죠. 미움과 살육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그들이 증오와 살육을 멈출 만큼 평화를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견해에서 볼 수 있듯, 클린턴 정부의 미국은 그 후 웬만한 중소국의 내전과 학살극에 대해선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르완다에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해도 수수방관해 버렸고, 보스니아 내전도 거의 막바지가 다 되어서야 참가했을 뿐이었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시도된 국제사회와 그 것을 주도하던 강대국의, '평화를 위한 실험'은 이렇게 실패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 5.마치며
이제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어언 10년이 흘렀고 영화화 이전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에게 적대하는 세력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설령 자기 편에서 500이 죽어 나가건 1000이 죽어나가건 미군 몇 명만 살해하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려한 저자 마크 보우든은 책의 말미에 미군의 조기 철수는 분명 잘못된 것이며, 상대에 대해선 애초에 가능한 한 협상하는 입장으로 견지하고, 그게 안돼서 무력을 쓸 경우엔 절대 고삐를 늦추지 말고 끝을 보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상대측은 승리의 개가를 올렸고 그 뒤에선 이 사태 배후에서 암약한 '빈 라덴'도 미소짓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미적지근한 태도는 그들의 적들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9.11테러의 참극은, 그 당시의 미국의 실책도 일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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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이라크 전쟁 이전에 씌어진 글이라서, 아들 부시와 그 정부가 벌인 전쟁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확실히 클린턴 정부는 그 이후 웬만한 국제분쟁에는 표면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죠. (미사일은 꽤 날렸습니다만.)
소말리아 문제로 돌아와서... 저 글이 씌어진 8년 전에도 이미 치안력을 담당한 공신력있는 조직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죠.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흡사 <블랙 라군>에서 보여지는 그런 무정부상태의 해적 소굴이 소말리아에 와글와글한 것이고,
소말리아가 위치한 아덴 만은 전세계 물류의 3대 길목 중 하나인 수에즈 운하-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이죠.
한편으로는 지진에 시달리는 아덴 만의 소국 <지부티>가 최근의 국제공조 중인 각국 해군들의 기항으로 쓰이면서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