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안티조선에 적극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조선일보의 기술직 근무자나 경비직을 비난하지는 않겠죠.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조선일보에 기여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 그들의 직업에 필수적인 과정은 아니라고 보통 보니까요.
반면 영화 평론은 단순한 기술은 아니죠. 특히 이동진은 온갖 사변적인 논의는 다 끌어다 썼으니 영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에 대해 쭈욱 이야기해왔다고 봐도 되겠죠.
그런 기자에게 "우리 사회에서 조선일보에 몸 담고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책임이 전혀 없을까요?
이동진이 쓴 경계도시2 리뷰는 다음 문장으로 끝나더군요.
- 왜 2003년의 사건을 주로 찍은 영화가 7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완성되어 개봉되는 걸까. “학문과 사상의 자유,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 이미 한국사회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의 초석들은 송교수 법정에서 허상일 뿐이었다”라고 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시제는 과연 과거일까.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우리는 대체 누구일까. -
우리가 대체 누구냐니!! 송두율과 관련하여 그런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그것보다 훨씬 쉬운, 송두율을 조선일보가 얼마나 미친척하고 물어 뜯었는지 기억 안나냐고 묻는 게 그렇게 이상하고 논리학 책까지 뒤져봐야 하는 일인가요?
저도 이동진의 조선일보 재직 자체가 무슨 씻을 수 없는 원죄처럼 취급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이 만약 생업을 때려치고 나왔다면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이었겠죠.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용서받지 못할 일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부끄러운 일을 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일을 그만두지 못하기도 하죠. 특히 생업이 걸리면 더 그러기도 하더라구요.
이동진에게 바라는 건, 그가 쓰는 그 수 많은 인간이 어쩌구 사회가 어쩌구 하는 글 한 귀퉁이에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표현해주는 겁니다. 무슨 전향서 쓰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이런이런 일로 조선일보에서 일했고, 조선일보는 문화부 기자에게 이런이런 면에서 좋은 면도 있는 직장이었다. 나도 답답한 면이 있었지만 그만두기는 어려웠다.' 이 정도로만 말해줬어도 저는 그 사람 이야기 다시 입에 안 담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