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아이들, 아파트, 집값, 기타 잡담
1.
요즘 층간소음때문에 좀 시달리고 있습니다. 윗집에서 애를 키우는데, 활달한 성격인가봐요. 9~10시까지도 집의 끝에서 끝까지 전력질주를 합니다. 전에 한 번 올라가서 항의한 적이 있는데, 주의시키겠다고 했지만 잘 안되는 것 같네요. 하긴 주의시킨다고 바로 안하면 애가 아니죠.
생각해보면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아파트라는 곳은 신나게 뛰어다니기는 커녕 걸을 때도 조심해서 걸어야 아랫층에 피해가 없습니다. 뛰어 놀고 싶으면 나가서 놀면 되겠지만, 저희 집 주변은 언뜻봐도 가까운 놀이터도 없고, 흉흉한 세상에 아이 혼자 바깥에, 그것도 밤에 내보내는 것도 못할 일입니다.
어릴 때 친척집에 놀러가면 재미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거주환경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독주택이었는데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옥상에도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옥상에서 뛰다가 시끄럽다고 혼나봤자 다 우리 엄마, 이모, 삼촌들인데요 뭐. 지금 그 정도의 집을 짓고 살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나 생각해보니, 평생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네요. 아이들이 다시 한 번 불쌍합니다.
2.
입지가 좋은 곳에 지어지고, 경비실이 있어 보안에 도움이 되며, 맞벌이부부가 집을 비워도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있고, 주차 공간이 풍부하고, 집이 정형화 되어있어 거래가 잘 이루어진다는 등의 장점을 내세워 그동안 아파트값은 미친듯이 폭주했습니다. 아파트 분양받아 큰 돈 벌었다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 지경입니다.
그 아파트라는 곳이 요즘 참 시끄러운 화두가 되고 있네요.
은마아파트 재건축 허용이 거기에 불을 붙였습니다. 제가 파악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은마아파트 소유자들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악소리 날 일이다. 과거에 재건축이 돈이 되었던 이유는, 마당이 딸려 땅이 넓은 단독주택 100가구를 사들여 1000가구짜리 아파트를 지었으니 기존 100가구 주인에게는 돈을 안받거나 조금만 받아도 새로 들어오는 900가구를 삥뜯어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재건축은 아파트를 허물고 또 아파트를 짓는 것인데, 아파트를 100층씩 올리지 않는 이상은 옛날처럼 삥뜯을 신입주민들을 확보할 수가 없고, 결국 기존 거주자들이 새로 올라가는 건축 비용을 다 내놓아야 한다. 그 돈 없으면 집 날리는거고. 과연 은마아파트 주인들은 다들 수억씩 재건축비를 쟁여놓고 있을까? 있다고 해도, 재건축이후 은마아파트 값은 수억 이상 오를까? 그냥 살던 집에 계속 사는 댓가로 수억이 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좋냐?"
제가 강남사람들 걱정해줄 처지는 아닙니다만, 거기서 끝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거기에 더 나가는 의견은 "아파트는 원래 고급 주택이 아니다. 돈없는 빈민들에게 임대용으로 공급하는 저질 벌집이다. 선진국 어디에도 아파트를 이렇게 비싸게 파는 나라는 없고, 국민들도 아파트를 투자 개념으로 살 물건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아파트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아파트를 집어던질 것이고 지금 아파트 하나에 노후를 기대고 있는 사람들 다 작살날거다. 아파트만 공급해댄 정책 덕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들고 있는데, 이거 크게 터질거다. 투기목적이었던 사람들은 빚 못갚아 작살날텐데 그건 별로 동정할 바가 아니지만, 재산이라고는 그 아파트 하나인 실거주자들도 건물이 수명을 다해버리면 건물 가치는 없어지고 아파트의 특성상 땅 지분은 코딱지만해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떨려나야 할거다. 이거 어쩔건가?" 입니다.
머리 복잡하네요.
3.
집이라는 게 워낙 비싼 물건이고, 의식주라는 기본 욕구에 해당되는 재화이다보니 어떻게 봐야할지가 좀 복잡합니다. 제가 차를 사면 산 순간부터 중고차가 된 제 차는 가격이 뚝뚝 떨어지고, 수명을 다하면 폐차하고 다시 새 차를 사야합니다. 여기에 "내 차 값 보상해달라" "헌 차 줄게 새차 달라"고 난리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집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산 순간부터 집값이 떨어지면 밤에 잠을 못자고, 수명을 다해 재건축을 할 때도 새 집을 새 차처럼 제 값 주고 사던가 돈 없으면 집 없이 살라고 하면 엄청난 거부반응이 나옵니다. 거주권은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으니 쉽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만, 거주권에 대해 호의를 배푸는 순간 투기가 등장하니 이걸 참 어찌 해결해야 할지. 언뜻 생각하기에는 새 아파트 값(새 차값이)이 대강 20년 정도(10년 정도) 남한테 월세 안내고 집주인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택시비 안들고 대중교통 타느라 불편함 겪지 않고) 살았다는 것만으로, 다시 되찾지 못해도 아쉽지 않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져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요?
4.
어제 심심해서 국토해양부 아파트 실거래가를 구경했습니다. 저희 동네를 구경하다 자기 전에 '그들만의 리그'쪽을 구경해 보기로 했는데, 억소리 나더군요. 도곡동쪽을 조회해서 타워팰리스, 도곡 렉슬 등의 가격을 보면서, 이 정도 집을 거래하는 사람은 도대체 현찰이 얼마나 많은건가 궁금했습니다. 큰 평수이긴 하지만 주상복합 아파트 값이 30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