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파트에 룸메이트형네 조카가 잠시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지방이 고향인 아이인데 이번에 대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그 아이 부모님이
아이가 몸도 약하고 내성적이니 중간고사 끝날때까지만 있게 해달라더군요.
마침 방이 하나 놀고 있긴 했고 그 형이 제게도 양해를 구하길래 OK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이가 정말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사용법도 모르더군요.
라면도 끓일 줄을 몰라서 형이나 저나 집에 없으면 애가 과자나 아니면 과일만 먹습니다.
사과나 배를 깎는 법도 모르는지 귤이나 바나나 한라봉 이런것만 먹어치우더군요.
그것도 혼자서 다... 다른 사람들도 그 집에 산다는 생각은 안 드나 봅니다.
세탁기 돌릴 줄도 모르면서 양말은 왜 항상 뒤집어서 던져놓는지.
애가 나가건, 나갔다 들어오건 인사할 줄도 모르고
어른들이 인사를 해도 지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립니다.
음식을 만들어주면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구요.
아침에 학교 가면서 이불도 안 개고 몸만 빠져나온 이불 모양 덩그러니.
인터넷에서 옷은 사들이면서 그 포장지는 방에 그대로.
그래요, 엄마가 '넌 공부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을 세뇌시키며 키운 건 좋다고 합시다.
또 공부도 잘 하는지 그래도 공부 잘 하는 대학에 진학했네요.
그런데... 경악할 만한 사건이 바로 엊그제 벌어졌습니다.
제가 퇴근하자 형이 제 방으로 오더니 '쟤 정말 심각해' 이러더라구요.
뭔 일인가 들어보니
애가 두 달이나 엄마 아빠와 떨어져있었는데도 전화 한 통 안 했답니다.
또 전화가 오면 수업중이라며 안 받구요. 심지어 수업중이 아닐때에도.
그래서 아빠는 걱정되는지 자꾸 형한테 전화하고...
그래서 형이 그 애한테 '너 지금 나 보는 앞에서 아빠한테 전화해'했더니
마지 못해 하는데 신호 한 세 번 가니까 '안받네요' 하고 끊더랍니다.
'엄마 아빠 동생... 안 보고싶니?'
'아뇨'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무 의미가 없어?'
'없어요'
'친한 친구나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그런 것도 다 필요없어요.'
'그럼 뭐가 의미가 있니 너한테는?'
'학점요'
'학점은 왜?'
'그래야 나중에 유리하죠'
너무 기가 막혀 형이 제 방으로 온 겁니다.
애가 사범대입니다.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실 분이에요.
사범대도 가고 싶어 간게 아니고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간 거랍니다.
애가 어릴때부터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욕심도 없답니다.
그냥 혼자 방에서 책 보고 컴퓨터 하고 그랬을 뿐 친구도 없었대요.
고등학교때 담임 선생님이 '얘는 사회생활 못할 겁니다'라는 진단을 내릴 정도로.
애가 어릴때 다쳐서 척추측만증이 있다는데 그래서 운동은 안 즐기고
군대도 안 갈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왜 저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의미도 없고 보고도 싶어하지 않는 부모님한테 등록금 용돈은 왜 받냐고
아무 것도 의미없으니 혼자 알아서 살게 쫓아내라고.
공부 잘하면 뭐하냐고 먼저 사람이 되라고.
저런 애가 임용고시 합격해 선생님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학생들은 뭘 배울까요 저런 선생님에게. 정말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일단 형은 아이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답니다. 애가 이러이러하다 하니 충격이 컸겠죠.
오죽했으면 형이 '혹시 어릴때 때린 적 있어?'라고까지 물어봤는데 그런 적 절대 없답니다.
그러면서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학교고 뭐고 당장 고향으로 데리고 내려오든지 해야겠다고.
그런데 옆에서 엄마가 말리나봐요. 제가 보기엔 바로 그것이 애를 망친게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만 잘 한다고 오냐오냐 넌 집안일 이런거 할 필요 없고 알 필요도 없어.
넌 그냥 성공하기만 하면 돼.
아무리 좋은 대학이면 뭐합니까 인간이 그 모양이고 부모형제도 없는데.
제가 보기엔 나중에 지 어른되면 부모 모른척 할 애예요.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올라 한 마디 하려다가도 혹시나 나 자고 있을때
들어와 칼로 찌르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냥 잠자코 있습니다.
어차피 남의 집 아이 인생에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고
한 편으로는 난 저런 걱정 안해도 되니 좋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