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가 시작되기 전 언론들은 근영이가 악역을 맡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은조는 악역이라기 보다 무서운 아이이고, 효선이의 말을 따르면 악질인 아이입니다. 왜냐하면
은조는 정을 정으로 돌려주지 않거든요. 뿐만 아니라 그러한 관계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입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따라 은조가 자라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것이죠.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두고, 배울 수 있을 때 전력을 다해 배워두고, 언제나 가방을 꾸릴 수 있게 준비하는 것. 왜냐하면
언제 또 갑자기 살던 곳에서 쫓겨나 도망을 쳐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부터 학습 된
이러한 방랑자 기질, 이방인 의식은 은조를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을 주거나 받아들일
수도 없는 아이로 만듭니다. 아니, 은조는 무조건적인 친절이나, 애정 자체를 이해할 수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상징계를 구축한 은조에게 친절과 애정은 뭐 뜯어먹을 게 있는, 오직
이익 앞에서만 발동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은조에게 효선이는 단순히 엄마의 애정을 뺏어간 존재가 아니라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무
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고, 다시 주의에 방사하는 매우 짜증 나는 상대였던 거죠. 은조는 효선이가
얼마나 위태로운 다리 위에 서 있는 지를 조건적인 악의를 통해 증명해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살던 효선이에겐 무지막지한 폭력이었겠죠. 하지만 효선이도, 은조도 정상적인
가정에서였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형제, 자매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면서도 비교적 안정되게 사회화에 성공하니까요.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정 자체를 갈구하지
않음으로써 보상받아온 은조와, 어머니의 부재를 모든 사람의 애정을 갈구함으로써 살아온 효선이
의 만남은 결국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은조는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아시다시피 기훈과의 만남
을 통해서였습니다. 기훈 역시 가족으로부터 출생 자체를 부정 받으며 이방인으로서 자라왔기 때문
에 은조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거죠.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 그와의 동일시를 통해 관
계 맺기에 성공하고, 대성참도가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려던 은조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가 한마디 말
도 없이 떠나버림으로써 다시 한 번 그 기회를 잔인하게 박탈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빗장을 지른 것은 효선이가 전하지 않은 편지였지요.
뿌리내리기에 실패하고 길을 떠나려는 은조를 붙잡은 것은 새 아버지였지만, 은조는 여전히 새 아버
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은조에게 그것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에 지나지 않
죠. 아니 어쩌면 은조도 한결같은 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다만, 은조는 가
업을 번창시키는 것으로밖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법을 모를 뿐이겠죠. 하물며 어머니의 잘못을 뒤치
다꺼리 해 온 그녀에게 있어서 가업의 성공은 구대성의 진심에 대한 유일한 속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를 이렇게 만든 어머니가 있습니다.
은조가 지금까지 그리도 벗어나고자 했고, 두려워하기까지 했던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쩌면 은조
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남아있을지 모를 어머니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은조를 이방
인으로 만들고, 사람 사이의 애정과 신뢰를 믿을 수도 없게 만든 송강숙은 그럼에도 은조에게 무조
건적인 모성애를 보임으로써 다시 한번 은조가 그녀를 버리게도, 벗어나게도 못하게 합니다. 과연
은조를 절규하게 한 것은 새아버지에 대한 연민일까요? 아니면 자신에게 악몽처럼 찍혀있는 어머니
의 낙인에 대한 좌절일까요.
만약 이번에도 은조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림자에 갇혀버린다면, 무조건적인 애
정을 주었던 아버지를 잃게 되고 또한 그 마지막 비수를 기훈이 꽂게 된다면, 그녀가 어디까지 절망
하게 될지......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저는 바랄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