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곳은 일반 사기업이 아니며 분위기도 확연히 다릅니다.
한 팀이 두 파트로 나눠 있는데 저희 파트는 9시 반 정도의 지각 정도야 그러려니 하는 쪽이에요. 대신 야근이 잦습니다.
반대로 다른 파트의 경우, 9 to 6가 확실합니다. 취업한 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옆 파트가 야근하는걸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구요.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불만을 가질정도로 업무량이 과도하지도 않고, 팀 내 분위기도 좋고.
팀장님 한 분을 빼고는 대리나 과장같은 직책이 있는 곳도 아니라 서열 관련 부담 가진 적도 없구요.
그런데 문제는 저희 팀에 계신 제 상사님입니다.
상사이기 이전에 대학원 선배로 몇 년간 알아온 분이고(나이 터울은 20년쯤 됩니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분이라 편한 선배로 믿고 따르던 분이었습니다.
지금 스트레스 받고 있는 문제를 제외하면 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분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구요.
근무한 지 몇 달 째 되니까 이분의 생활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술을 좋아하세요. 저도 술은 좋아합니다. 처음엔 야근하고 같이 새벽까지 술도 많이 마셨으니까요.
파트원들과 다 함께 술을 먹고 그 다음날 열시, 열한시 출근도 많이 했습니다 초기엔;
- 저래도 문제가 안 됐던건, 저렇게 늦게 출근하고 또 다같이 자정까지 야근+새벽까지 술크리였으니까요;;
술을 드시고 - 오전 10~11시 사이에 늦게 나오신 후 - 점심을 대충 같이 먹고 - 낮 2-4시에 안대끼고 주무십니다; 눈을 붙이는게 아니라 그냥 주무시는거에요.
- 그리고 깨서 일을 하기 시작해서 퇴근 시간 2~30분전에 일을 시키세요 - 그리고 같이 저녁을 먹고 - 들어와서 한 시간쯤 있다가
- 7~9시까지 안대끼고 또 주무십니다. - 일어나서 9시 이후에 시킨 일을 검토하고 다른 일을 던져줍니다. - 그렇게 야근은 이어지고 - 새벽엔 같이 술을 마셔주길 원하시죠.
입사 반년차까지는 저도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은 저렇게 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정시에 퇴근할 땐 이러이러한 일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1년이 넘어가니까 이건 아닌거에요.
업무량이 많아서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해도 모자랄 정도면 차라리 낫겠는데,
그게 아니라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씩 주무시고, 시간 마다 커피에 담배피러 나가시면서
그 외에 시간에만 일을 주시고, 확인하시고, 다른 파트원들이 야근하는걸 당연시 여기시는게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파트원(이 친구역시 상사분 대학원 후배입니다. 제 직속 후배거든요;)이 금요일 저녁에 5-6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 본가에 간다고 하니 무슨 일이냐고, 누가 위독한거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하는거에요.
동생때문에 집안이 뒤집혀 내려간다는 녀석이었는데, 가야 된다고 하니 기어이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식사하러 가시더라구요.
- 안 좋은 소리를 하시는데,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상사에게 할 표현은 아니지만, 정말 빈정이 상하시거나 툴툴대며 삐져버리세요 -_-;;
제 할일을 다 하고 있고, 저 빼고 다른 파트원들이 죽을만큼 바쁜게 아닌 상황에서 야근을 종용하는 분위기에 질려서
지난 달엔 일주일에 한 두번을 빼고 죄다 칼퇴했습니다. 대신 낮엔 다른 짓 최대한 줄이고 업무만 집중하구요.
그랬더니 며칠 전 퇴근할 때 인사를 안 받으시네요?;;;; 심지어 칼퇴가 아니라 아홉시 퇴근이었는데?;;;
저한테 대놓고 뭐라고 하실 순 없는게, 일을 못 하는것도 아니고 낮에 자거나 노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뭐라고 대놓고 질책할 꺼리는 안 되니 야근 안 하는걸 마음에 담아두시고 삐져버리시는거에요.
- 표현이 부적절하지만 따로 대치할 만할 표현을 못 찾겠습니다;
이 스트레스를 그저 밤마다 혼자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는걸로 풀고 있습니다-_-
야근 스트레스 빼고는 정말 다 좋거든요.
직장 자체도, 팀원들도, 분위기도, 하고 있는 일도, 심지어 직장과 집은 고작 3km 거리니 가깝고.
그렇다고 바라시는대로 무작정 매일 매일 야근(을 빙자한 자리지키기)을 하자니 울화통이 치밀어요.
차라리 낮이랑 밤에 낮잠이나 안 주무시고 그러시면 좀 좋냐구요!!!!!!
주무시는 동안 나는 일 하는데!!!! 아침에 술 마시고 늦잠 주무실동안에도 우린 정시에 출근해서 일 하는데!!!!!
에잇- 하고 벌컥 질러버리자니 이변이 없는 한 매년 몇 번씩 봐야하는 선배님이시라는게 마음에 걸리고,
무엇보다 야근 스트레스 빼고는 다 좋은 이 직장을 버리고 싶지도 않아요.
인간적으로는 잃고 싶지 않은 선배님이시기도 하구요. 아마 일로 엮이지 않았다면 평생 좋은 말만 했을겁니다.
다른 선배들이 이 상사분 밑에서 일을 하셨었는데 다들 1년을 못 넘기고 관두셨거든요.
처음엔 선배들 왜 그랬을까, 했는데 이해가 조금 가기 시작해요.
휴. 나름 위기라면 위기가 닥쳤는데(야근 눈치주기 압박이 심해졌으니까요;) 이를 어떻게 풀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