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결혼 전야

  • Napa
  •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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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cosmos님 글을 읽고 Aem님이 올려 주신 노래를 들으며 한 번 끄적여 봅니다.

처음 알게 된 지 10년도 훌쩍 넘었네요.
첫키스를 술 취하고 자다가 당하게 만든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사귀지도 못했어요.
남녀간의 일에 대해서는 짝사랑밖에 모르던 저는 그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지만 차마 사귀자고는 못했지요.
서로가 사는 곳도 많이 멀었고 그에겐 오래 된 여자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아가씨가 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그는 고민하는 듯 했지만 금새 결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매일같이 전화하는 제게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거라고 했어요. 더 연락하지 말라고요.
저는 많이 울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일주일 정도는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울었어요.
반 년 정도 지나니 살만해졌습니다.

8년쯤 잊고 살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혼자더군요.
아가씨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했어요. 그간의 사정이 어찌 되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 그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전같을 수는 없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되기엔 서로가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두 세계의 사이를 그의 마음 없이는 뛰어넘을 생각이 없었어요.
8년 전 울면서 배운 교훈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는 여전히 절 원하지 않았고 저는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 다시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전 그보다도 더 많이 더 오래 제 마음을 흔들었던 사람을 놓쳤어요.
잠시나마 제가 놓친 사람을 잊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딱 그가 떠올라서 그를 찾았고요.
과연 그 옆에 있으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이성으로 대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더라고요.
마음이 쓰려질 때면 메신저 등록을 해서 가끔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요.

그가 내일 드디어 때늦은 결혼을 합니다.
어느 날부턴가 메신저에서 말을 걸어도 응답이 없는 게, 알고보니 결혼할 분과 공용으로 썼던 모양이더군요.
대놓고 말은 않지만 눈치로 보아 이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 것 같았어요.
결혼 사실을 알고 나서 메신저 목록에서는 삭제를 했습니다.
축하 전화를 한 뒤에는 전화번호도 지웠고요.
축의금을 나름 거하게 보내 주긴 했지만 결혼식에는 안 갈 겁니다.
저번주부터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추어 친구 모임을 만들어 두었어요.

꼭 그래야 한다거나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가끔이나마 위안이 되어주던 그가 떠나가는 걸 직접 보며 축하해 줄 마음이 안 생기는 것 뿐이지요.
흥, 어차피 유부남에 애아빠가 되면 날 신경써 줄 여유 따위 없을 테니까 하는 식이죠.
작년 이후의 저는 이렇게나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울면서 그와 여자친구가 행복하기를 빌었던 저는 간 데 없어요.
아직도 작년의 상처가 남은 가슴으로 가봤자 부러움에 치를 떨 뿐일 테니 그냥 피하는 거지요.

그와의 관계가 마감된 것이 아쉽지만 그나마 적당히 갈무리된 게 다행이겠죠.
지금으로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끔 건너 건너 소식을 들을 수는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좋아하고 원했던 만큼 그렇게 친하지는 못했어요.

지금쯤 그는 총각파티라도 하고 있을까요. 이젠 연락할 방법도 없지만 하더라도 부질없죠.
그가 행복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그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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