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루이와오귀스트님이 덧글로 알려주신 사이트 The auteurs 에서 영화 하녀를 봤어요.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여공들이 입은 옷이 화려해서 재밌었고요. 현실적으로 좀 말이 안 된다싶긴 했는데 옛날에는 진짜 공장직원들이 그 정도 정장을 (아마 그 시대에는 맞춤이었을텐데요) 사 입을 돈이 되고, 공장에서 직원복지를 생각해서 음악교육을 시켜주기도 했나요? 아니면 영화적 허구인지.
암튼 앞머리를 사선으로 내리고 짧은 머리를 한껏 위로 올려묶은 엄앵란은 케세라세라의 정유미가 생각나게 만들었어요. 턱이 네모나게 각진 게 닮아보여서요. 갸날프고 작은 체구도요.
2.
진짜든 아니든 간에, 여공들이 예쁜 옷을 입고 나와서 눈은 즐거웠던 것 같아요. 엄앵란이 계속 입고 나오는 허리 잘록한 트렌치 코트이며, 허리는 잘록하고 아래로 풍성하게 퍼지는 스타일의 스커트와 보트넥 블라우스는 요새 입는 참한 스타일과 비슷하더라고요. 요새의 복고풍이랑 맞아떨어져서인지 거기 나오는 의상 모두가 -심지어 하녀의 시스루 원피스까지!- 그리 뒤떨어져보이지 않았어요. (본처의 한복 빼고요.) 만약 리얼리티를 살린다고 여공들이 허름한 사복을 입거나 공장복을 입은 걸로 나오면 이만큼 화면 때깔이 안 살았을 것 같아요.
3.
그리고 음악!! 전 음악이 꽤 좋았어요. 초반부의 음악도 좋은데, 중반에 술집이랑 거리풍경 보여줄 때 음악이 재즈였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스탠더드한 곡이라서 즐거웠어요. 딱 흥청망청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빅밴드 스타일 곡이거든요. 꼭 옛날 한국영화라고 해서 궁핍하고 빈곤한 일상이 나오는 게 아니라 화려하고 부유한 느낌을 주는 것도 좋았어요. 특히 거리씬이랑 택시타는 씬 같은 것은 동시대의 서구권 같은 느낌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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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 당시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축에 속했을테지만, 이 영화만 봐서는 그다지 못 사는 나라 같아 보이지 않아요. 이층 양옥집에, 피아노에, 입주가사도우미까지 있고, 아들도 잘 차려입고, 딸은 고운 원피스에 머리에 장식도 달고 있고요. 집에 쥐가 나올 정도의 위생상태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선진국 가정도 방역은 지금처럼 철저하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요.
5.
극초반과 후반의 본처의 태도는 쌜쭉하고 새침떼기 같은 말투와 태도인데 반해, 극의 대부분 동안 아내의 태도는 매우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이며 순종적입니다. 아내의 태도 차이도 극의 반전을 암시하는 미세한 단서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가로로 넓고, 턱이 뾰족하게 발달하지 않은 얼굴형, 흰 피부에 짙은 눈썹, 커다랗고 쳐진 눈의 아내역의 배우는 그야말로 자기희생적인 본처스럽게 생긴 것 같았어요.
6.
제가 또 좀 놀란 것은 스킨십이 상당해서였어요. 쥐가 나왔다고 놀라는 아내를 부엌 바닥에서 부둥켜 안고, 뒤에 자식들이 보고 있는데 얼굴에 입술을 부비고 하는 게 그 시대에서 상영가능한 표현인가 궁금했어요. 그리고 그 시대에 그 정도로 덜 가부장적이고 아내에게 애정표현이 스스럼없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7.
암튼 음악선생님 아저씨는 정말 마성의 유부남인가봐요. 누구나 보면 홀딱 넘어가요. 연기를 잘해서인지 관객으로서 보기에도 좀 멋있어 보이긴 했어요. 이 사람 역시 아내와 마찬가지로 극초반과 후반에는 능글맞고 유들유들하고 적당히 닳은 인물로 보이는데, 극의 대부분인 중반 동안은 굉장히 자신에게 엄격하고, 금욕적이고, 가정과 아내에게 헌신적인 인물처럼 나오죠. 가정을 지키진 못했지만 최소한 그런 가치를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을 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반전과 관련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스포일러 시작: (이 영화의 중반 부분 얘기는 다 허구인 이유가 원래 아내와 남편의 캐릭터가 아닌 뭔가 이상화된 캐릭터이기 때문이에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아내와 가정을 지키려는 금욕적인 남편이 나왔던 얘기는 상상 속의 이야기이고 실제 아내는 투기가 있고 억척스럽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사는 스타일이고, 실제 남편은 젊은 여자 밝히고 능글맞고 닳아빠진 인물인 게 아닐까 했어요.)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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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나온 안성기와 딸로 나온 배우가 닮았어요. 남방계 얼굴이라 둘이 비슷해 보이더군요. 딸이 장애가 있도록 설정한 이유는 뭘까 궁금했어요. 장애가 있더라도 비싸고 깔끔한 옷을 입히고, 목발보다 더 좋아보이는 보조기구를 제공할 정도로 부유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 외에 다른 필요성이 있었을 것 같은데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