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정혜윤)

  • sae rhie
  •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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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기대했던 <허트 로커>를 봤습니다. 결과는 참혹합니다. 다섯 개 만점 중에 별 두 개를 주고 Very Bad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났습니다. 감상문을 적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영화를 되새기면서 다시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CGV오리 아래층에 있는 영풍문고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책 두 권을 샀습니다.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듀게에서 몇 분이 칭찬했던 편혜영의 작품 <저녁의 구애>와 씨네21을 통해 친숙한 김중혁의 작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5,500원에 불과한 가격도 이 책을 사게끔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정혜윤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라는 책도 집어 들었습니다. 그녀의 예전 작품인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무척 좋게 읽었던 터라 주저 없이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프롤로그를 읽었습니다. 정혜윤이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지 궁금하시다면, 그녀가 쓴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지나치게 명민한 내 후배의 옆얼굴을 눈동자로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던 일이 있다. “너는 마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애 같구나.” 그때 내 마음속의 완벽한 문구는 이것이었다.

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나는 언제나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라는 말이 나의 방법론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두 번째야말로 우리의 어떤 욕구를 설명한다. 더 배우려는 욕구, 읽으려는 욕구, 쓰려는 욕구, 골똘히 생각해보려는 욕구, 규명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욕구. 그러고 보면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와 관련된 문제 같다. 언제나 몹시 강렬하고 매혹적인 말 ‘전설’은 이렇게 바꿔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정신이 꿈꾸기를 계속한다면 잃어버릴 것은 없다. 두 번째 세계, 전설, 꿈꾸기. 이 단어들은 모두 같은 생각으로 나를 이끈다. 매 순간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우리에게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보이는 그대로만 보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인데, 어떤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적합한 대화 상대인가는 너무나 상대적인 것 같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이기도 한, <사토장이의 딸>의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고전과 현대 문학을 골고루 섞어 읽는 게 가장 좋은 독서법이라 했는데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를테면 오웰의 <1984>는 하루키의 <1Q84>와 함께,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는 매카시의 ‘국경 3부작’과 함께, 디킨스의 소설은 닉 혼비의 소설과 함께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10쪽 ~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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