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족들의 정체성.

  • 은밀한 생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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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묵은 지같은 말도 있지만.
제 주변 남자들은 죄다 봄을 타는 건지 (실은 주변 여자들의 남자들)
벌써 세 명의 아가씨들이 하루 아침에 말도 없이 잠수 타버린 남자들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이 "은밀 언니 대체 그 남자의 마음이 뭘까요? 대체 왜! 왜!"라면서
비탄에 잠겨 조언을 구하지만 저도 뭐.
"잊어라 잊어라 잊어라 전화하지 마라 마라 마라 그는 갔다 갔다 갔다"
이런 말밖에는 딱히 그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없습니다.

연락을 무작정 끊어버리는 사람과 그 단절을 당하는 사람.....
단절을 당하는 사람쪽에서는 온갖 추측을 하게 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무슨 사고가 난 것인지 걱정하고.
바로 어젯밤에도 나에게 웃음 짓던 그 남잔데,
어젯밤 헤어질 때만 해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일주일 전만 해도 나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그랬는데,
일주일 전만 해도 내가 있어서 소중하고 벅차다고 그랬는데.

"어째서 이렇게 전화 수십 통을 씹어버리고 문자 수십 통을 씹는 걸까?"
"그는 날 사랑하기나 했던 걸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한순간에 변하지?"
"설사 그 마음이 한순간에 변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는 이제 내가 이렇게 괴로워서 어디가 잘못되도 상관 없는 걸까?"
"이렇게 내 연락을 매정하게 씹을 사람이 아닌데 정말 사고라도 난 걸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오기도 발동합니다.
"안 받는다 이거지? 오냐 받을때까지 계속 해주마."
"진상을 미친듯이 떨어야 차라리 너를 잊겠지 그래 나 막 나가련다"
"차라리 헤어져 너한테 정 떨어졌어!!! 라고 말을 해 말을. 답답해 답답해"
"나처럼 좋은 여자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참을 수 없어. 좋다고 들이댈땐 언제고!!"

일방적으로 단절을 당한 사람들은 과장 좀 해서 하루가 일년인 것이죠.
오지 않는 전화를 노려보면서....각각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봅니다.
침묵.분노.이해.순정.서글픔.그리움.모멸감.인정.자학.자기반성.인과관계 고찰. 기타 등등..

하지만 결국 단절을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단절한 사람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설명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거죠.
3월과 4월동안 제가 아끼는 그녀들이 공교롭게도 이런 단절 유형의 일방적인 헤어짐을
당했습니다. 모두 자기 말고 다른 사람도 귀한 걸 아는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에요.

정말 일방적으로 잠수 타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그럽니까? 왜! 왜! 그거 병 아닙니까? 엉? 너만 사람이냐 -_-"
일방적인 잠적의 방식으로 이별했던 사람들은 반성들 좀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럴 거면 연애를 하지 말든지,다음 연애에선 그러지들 마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잠수를 탔으면 며칠만에라도 좋으니까 문자 한 통 좀 날려주세요.
"미안하다. 헤.어.지.자. 다신 연락하지 말.아.라."

이 얘기를 하면서 계속 왜 그래 왜 왜 왜를 반복하는 저에게 남자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러게. 왜 그럴까?" ㅡ_-;
잠수족들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가요. 그들은 어디서 왔나요.
그들을 알아볼 표식이 있는지 잘 연구해보고 저의 그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두 번 다시는 슬픔의 도가니탕용 국거리가 되지 않게 말입니다.
그런 표식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혹시 "내가 잠수족이라서 아는데 그건 이래서 그런 거다"
라고 대답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 익명으로. ㅎㅎ

언젠가 만났던 남자가 실은 늘 잠적의 이별공식을 되풀이하던 남자였는데요.
그 남자가 전 애인의 전화가 울리는 걸 보면서 그냥 씹는 광경을 본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게 뭐냐고 주절대자 자신도 자신의 이별 방식에 많은 자괴감을 느끼긴 하더군요.
하지만 전화가 오는 그 순간에 그가 가진 감정은 분명히 "짜증"이었어요.
안 받으면 알아서 이별 통보인줄 알 것이지 왜 여자들은 설명을 그렇게 바라냐고.
사람 좀 불편하게 궁지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상대의 마음이 변했으면 이미 관계는 끝난 건데 그걸 꼭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냐고.
전화하기 싫어서 안 하는 사람한테 "왜" 왜냐고 묻는지 모르겠다고......
말씀을 하십디다.

희한한 것은 같은 잠수족들끼리는 잘 연애를 안 한단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이게 참 무슨 조화인지..... 예외가 물론 존재하고 연애문제는 특히나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잠수족들은 남자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왜요.
잠수 타고 문자 씹고 전화 씹고 스팸에 등록해 놓고 단절을 당한 사람이 찾아오고.
이런 복잡한 이별공식을 되풀이 하시느니 "헤어지자"라고 문자 한 통 날리는 게.
훨씬 잠수족들의 정체성(일단 나 편하자고 다른 이를 울리는)에 잘 맞을 것 같은데.

그것 참 모를 일입니다. 모를 일이에요. ㅡ_-





* 글을 쓰고 올리는 동안 잠수족 관련 글이 밑에 있네요.
   과연 그들은 도처에 암약중이신가 봅니다...;_;


* 그리고 또 생각났는데, 그 잠수족 남자가 피식 웃으면서 한 말은.
   "왜 여자들은 전부 다 똑같이 '어제까지만 해도 날 사랑한댔잖아! 아무 일 없었잖아!'
    라고 말하는 거야. 그게 중요해? 그게 왜 중요해? 중요한 건 변했단 거지."
   라는 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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