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아기를 보는 눈

  • 이울진달
  •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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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모든 생물의 어린 아기들은 왜 그리도 예쁘고 귀여운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어른 생물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살아남기위한 한 방편,이라는 답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눈에 안 예쁜 몇몇 아기 생물들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정말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

원래 아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어린이도 좋아하지요.

한 때는 늘 가방에 사탕이나 초콜렛을 가지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길에서 만나는 아기들에게 쥐어주기도 했고
요즘도 제 꺼라고 미니마우스 초콜릿 따위를 샀다가
병원에서 울고있던 꼬마 숙녀님께서 낚아채..시는 바람에 고이 상납하기도 했고요.

어릴때도 사촌동생들 들려주려고
명절이 오기전이면 늘 책 대여점에서 그..안경끼고 보는 무서운 이야기책;을 빌리곤 했어요.
책으로 읽어주면 재미가 없기때문에,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다섯개씩 여섯개씩 달달 외워가서
외갓집의 가장 어두운 방에서 불을 끄고 들려주는게 낙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쯤 되면, 둘러앉은 아이들 중에 눈을 제일 크게 뜬 동생을 골라서
귀에다 대고 '와악-'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그러면 저만 빼고 모두들 '으아아아아'하면서 뛰쳐나가서
깜깜한 방에 혼자남은 제가 더 무서워지곤 했어요.

그림 그려 달라며 종이 들고오면 그림 그려주고
업어달라면 업어주고 미장원놀이 하자면 손님해주고..
그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었으니.

3.

그래도, 지나가는 아기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껏 한번도 '저의 아기'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저는 아직도 결혼계획이 없고, 한다고 해도 서른 너댓살쯤 아주 늦게,
아기는 있어도 없어도-오히려 누군가의 인생을 일정시간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데 요즘은-정확히 말하면 한 육개월쯤 전부터 자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를 보면 그냥 귀엽다, 예쁘다가 아니라
넘어질까 안쓰럽고 작은 손이나 가는 목덜미 같은게 너무너무 애틋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는데, 모든게 걱정스러우면서 사랑스러워요.

마구마구 마음이 가서 눈길 거두기가 힘이 듭니다.
한번만 안아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지만
요즘 세상이 하도 험해서 엄한 오해 받을까봐 관둡니다.

예전에는 TV 사극같은데서 자식을 위해서 모략, 중상 이런 것 하면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이기적으로-못됐다 그랬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저도 내 아기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할 것 같고.

여전히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고 일정기간 보호해야 할 존재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운 줄 알지만
제가 저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나에게 내 아기가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섭고, 그런 상황은 피하는 쪽으로만 혹은 먼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면
지금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일 아침에 황새가 아기를 창밖에 놓고 간다고 해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버겁고 그만큼 행복하고 더 더 더 많이 강하게요.

남자친구가 있지만 사귀기 전부터 한 생각이고,
지금도 그사람의 아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건 얼마간은 저의 보살핌을 받겠지만 독립된 그냥 그 아기 말이예요.
제 아기일수도 있고 생물학적으로는 연관이 없지만 인연이 닿은 아기일수도 있고..

갑자기 제가 왜 이러는지 저도 알 수가 없어서 좀 당황스럽네요.
20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이런 기분을 갖는 사람이 종종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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