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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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마지막 가을, 당시 정부에서 전국적으로 야심차게 추진하던 정책에 의해 도시락은 사라졌다.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급식은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다들 도시락을 싸왔지만 점심, 저녁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축구를 하기 바빴기 때문에 도시락은 죄다 2교시, 3교시 마치고 싹 비워버리기 일쑤였다. 그 단련된 경험 덕분인지 처음 입대 후 남들이 밥 3분만에 못 먹어 고생할 때 나는 잔반까지 몽땅 해치워서 짬통에 식기를 90도로 꺾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수업, 혹은 야간자습 예령이 울리기 전 식당 매점으로 뛰어갔다. 매점에서는 원래 라면, 비빔밥, 백반(주로 선지국이 나왔다)를 매식으로 팔았었다. 비빔밥은 고추장을 두 숟가락 가득 넣어서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얼얼한 김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차피 순 씹히는 게 숙주나물과 다시마밖에 없었으니 별로 무맛이었을 테다.) 혹은 비빔밥에 질리면 실내화 바람으로 교문 밖으로 나가 분식집이나 밥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한 끼 식사는 맛보다는 축구시간을 더 벌기 위하여 전투적으로 해치워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러던 풍경은 전교생을 상대로 한 급식이 시작되면서 바뀌었다. 매점은 식당 한구석으로 밀려났고 Y유통이라는 업체가 들어와서 식당에다 급식소를 차렸다. 매점 아줌마는 우리가 라면 사먹으러 갈 때마다 우리를 잡고 한탄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소릴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리고 급식이 시작된지 3일째. 여기저기서 배탈 환자가 속출했다. 겨우 사흘만의 일이었다. 원인이 짚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변인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는 녀석들이 줄을 이었고 급기야 학교를 조퇴하는 놈들이 여럿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로 달려가다 말고 중간에 뒷마당에서 괴춤을 까뭉개고 오토바이 소리를 내는 놈도 나올 지경이었다. (왜정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1층 변소는 바깥에 있었다. 지금의 정독도서관 건물을 생각하시면 된다.) 들리는 소리로는 학교 오다가 말고 만원버스 내에서 그대로 실례를 해 버린 놈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후일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되어 타 학교가 우리 학교에 시비를 걸기 딱 좋은 구실이 되었다. - 그 해 겨울, 도심지인 창동에서는 유달리 학교간 패싸움이 많았다고 한다.

수능을 두 달 남겨둔 고3을 할퀴고 지나간 병마는, 단순 식중독이 아니라 세균성 적리로 밝혀졌다. 흔히 말하는 "이질"이었다. 법정 1급 전염병이 창궐하면 어떻게 처리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갑자기 정부의 높으신 나으리들이 줄줄이 학교를 방문하고, 역사가 좀 된 학교랍시고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정치인 동문들이 다 한마디씩 떠들더니 다음날에는 On your mark 뮤직비디오에 나올 법한 허연 옷 입은 무리들이 학교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설사똥을 찌끄리는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병원으로 강제연행되었다. 법적으로 격리시켜야 된단다. 천만다행이었다. 당시에 아는 친구들끼리 계를 조직해서, 교문 밖 친구네 하숙집(촌에서 올라온 놈들이 많았다)에서 월식을 끊고 하숙밥을 같이 얻어먹는 상황. 급식을 하라는 학교측과는 따로 쇼부를 봤었다. "샘 여기 그럼 하숙돈 내놘 거는 어짭니꺼?" "마아... 고삼찌끄레기들인데 느그들까지 뭐라 카긋나. 느그는 느그들끼리 해무라. 고마." 결과적으로는 강제 급식을 피할 수 있었다. 천우신조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행정이 그렇지만) 사태에 대한 초동대처는 이미 어긋날 대로 어긋났다. 명목상 학교의 책임자인 교장은 우왕좌왕하는 게 눈에 그대로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업무도 제대로 파악못한 상태에서 대처할 수 있을 리 없었을 듯싶다. 부임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사람 인간성은 한없이 좋으나 무골호인이었던 교감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란의 와중에 환자들만 병원에 격리당한 채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원인제공자인 Y유통측은 해당 식재료를 이 사이에 이미 폐기해 버렸다. 결국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의 소재는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지금도 동창들 사이에서 제일 존경스러운 대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어느 선생님(그는 쉬는시간마다 우리와 축구를 함께 했다)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보건 당국자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 새끼들아! 느그덜 일처리 더듬하게 해쌌는 이 시간에도 내 제자들이 지금 병원에 갇혀가지고 물똥 피똥을 싸면서 질질 멘다! 학생들 보는데 부끄럽지도 않나!" 드잡이질은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말리고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학생들은 평소 "4차원"이라며 다들 외계인처럼 생각한 '송뽀대'를 그날 이후로 조금은 우러러봤다. 심지어 박정희와 외화벌이의 찬양자였기에 만날 교무실에서 아옹다옹하던 공업선생 "심코"조차 송뽀대를 좋아했다. (여담으로, 사회에 나온 후 송뽀대가 수업시간에 말한 그 반신반의할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경악했다.)

한편 환자들은 시내 병원 이곳저곳에 분산수용되어 있었다. 개중에서는 학교에서 가까운 F 병원에 제일 많이 입원했다. 가끔 멀쩡한 상태인 우리가 병원에 갇힌 놈들 면회도 가 주고 했지만, 혈기왕성한 이팔청춘들은 할짓없는 병원생활이 상당히 심심한 듯했다. 원래 이질이라는 게... 요즘 세상은 약이 좋아서 밥 잘 먹고 약 잘 먹으면 한 사나흘 지나면 체력이 돌아와서 별 증상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격리시키게 되어 있었다. 입시도

얼마 안 남았는데 책이나 한 줄 더 봤으면 좋았으련만, 심심한 인종들 중에 몇 명은 끝내 사고를 쳤다. 링게르를 떼자마자 밤중에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 담을 넘어 PC방에 갔는데, 딱 걸렸다. 그것도 하필이면 지방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뭐 껀수 없나 하고 병원 주위를 배회하던 친구 아버지인 기자하테 딱 걸렸다. 그래서 놈들은 지방 뉴스를 탔다. "구멍뚫린 환자관리 이대로 괜찮은가?" 그 뉴스는 대박을 쳐서, 이틀 뒤에 중앙방송 공중파를 탔다. 그리고 1주일 뒤에 집에서 EBS 수능강의 방송을 다 보고 문득 채널 돌리다 일본방송이 나오는데 거기서 또 봤다. "아시아 소식 : 한국 남부에서 적리 발생..." Blur처리로 뿌옇게 된 화면이었지만 어디서 많이 보던 시퍼런 교복이 너무 선명했다.(.....)

놈들은 퇴원하자마자 샘들한테 야구빳다 부서질때까지 맞았다.

학교에 남아 있던 멀쩡한 자들도 생애 최초의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어쨌거나 가리늦가 보건소에서 법정 1급 전염병에 대응하는 법적 절차에 따라 역학조사를 실시해 왔다. 이른바 가검물 검사였다. 가검물 검사는.... 특수처리된 면봉을 항문에 깊이 삽입하여 부드럽게 회전시켜 직장 내의 배설물을 검출한 후, 역시 특수처리된 플라스틱 캡에다 넣고 캡 내부의 뭔가가 부서져서 약품이 흘러나올 때까지 꾹 눌러서 밀봉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들 항문 내에 뭔가를 삽입한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예외가 있으려나?;;;)

그런데, 검사 진행을 감독하던 수간호사 아줌마가 갑자기 검사를 중단시키고 말했다. "이봐라, 이래사면 잘 안 묻는다이. 푹 쑤시가지고 빡빡 돌리가 묻히 놔야 제대로 검출이 되지." 그래도 잘 안 되니까 - 급기야는 커텐치고 스스로 자가 검진하던 것을, 간호사의 손에 의해 전부 푹 쑤셔지게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날 후면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키가 작은 어떤 놈은 삽입했을 때 장난스럽게 신음소리를 냈다. 딱. 수간호사 아줌마의 사과통만한 주먹이 놈의 정수리를 때렸다. 딱. 그리고 딱 그 순간. 교실 앞을 지나가던 우리 담임이 있었을 뿐이었다. "나와!" 아, 불쌍하여라. 딱. 딱. 딱. 딱. 딱. 차가운 교무실 돌바닥 앞에 별안간 사람의 의자가 돋아났다. 정수리와 돌바닥이 키스한 채 놈은 한 시간 동안 즐겁게 버티기 놀이를 했다. 선생들이 모두 지나가면서 놈을 갈궜다. "불두덩에 배냇물도 안 마른 기 벌씨로 어른 숭(흉내)를 내나? 차라리 처 가서 용두질을 해라." "아 이 선생 아덜 듣는데 뭐라캐샀소..." "절마가 압니꺼? 징그럽그로." 그 친구는 불쌍한 표정(물론 머리를 박고 있었으니 표정이 거꾸로 되어 있었다.)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교무실에서 타자치고 있던 나는 시선을 외면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 부임한 교장이 학교 책임자랍시고 사과를 했다. (도의상의 책임이란 게 뭔지 모르던 시절이다.) 여전히 원인규명은 되지 않은 채, 학교는 한 달간 파행수업을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세기말 마지막 수능을 봤다. 그 해 우리 학교 3학년 중 2/3은 재수나 반수를 했고, 해피 뉴 밀레니엄은 무려 재수학원에서 맞았다. 다음 해, 우리 동네 학원가에는 어디서 많이 보던 놈들이 똑같은 행색(눈밑에 다크서클, 대충 차려입은 츄리닝, 20Kg은 되어 보이는 책가방)에 화이트 소주를 홀짝거리는 풍경이, 참 자주도 보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M고 학생회장은 반드시 재수한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는 이 해에도 지켜졌다.

한 5년쯤 지나 우연히 인터넷에서 만난 다섯 해 아래 졸업생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저 시절 얘길 했더니 "Y유통요? 아직도 급식 하고 있는데요!" 라는 대답을 들어 잠시 므엉했다.


덧.
그 이후로 나는 이런 급식관련 소동을 볼 때마다 "큰 회사에 맡겨서 안정적으로 해야 뭐가 되지..." 라고 생각해 왔다. 친척이 잠시 유통 쪽에 근무했을 당시에 봤던 식재료 관리를 보고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난 죽어도 유통사업에 취직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CJ푸드시스템이니 삼성에버랜드니 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여전히 사고를 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래갖고서야 대체 요즘 애들은 밥은 어떻게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하숙집 밥이나마 맛나게 먹고 다녔는데.... (갑자기 오이 냉국물 딱 한 방울을 몰래 하숙집 밥에 떨어뜨렸는데 발작을 하던 친구놈 하나가 떠오른다.)


_____________

밑에 촌지 얘기가 나와서 문득 올려봅니다만, 지금 기억을 되돌려봐도 저는 촌지보다는 선생들 폭력(이건 좀 심각했습니다. 여학생들의 경우 견디기 힘들었을 듯)과 업체간의 리베이트 쪽이 더 기억에 남더군요. 촌지 문제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리베이트는 제가 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케이스라. (그놈의 X샘종합평가는 왜 만날 학교에서 사 와가지고 아침자습 때마다 풀고 있었어야 했는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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