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이 그랬듯 온전한 '우리 집'이 없었고,
학교 사택에 세들어 살면서 옆동네 외갓집을 가끔 왔다갔다 하며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촌동네 학교의 구성원이라고 하면,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국민학교 병설유치원 다니던
장터 멤버들이 소롯이 그 학급으로 올라오고, 그게 두 반으로 적절히 섞어찌개로 앉아 있습니다.
가끔 양념으로 저기 산골 사는 애들이 들어오긴 합니다만, 이 친구들도 어차피 한두 해 전부터
읍내 5일장이나 태권도 도장에서 다 얼굴 본 사이기는 합니다. (웬 태권도 도장.... 하시겠지만서도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군사정권에 아시안게임에 올림픽, 충효 상무가 강조되며 애들 우유 광고를
무려 유격훈련으로 찍던 세대죠. 아아아 남양 삼쩜사 우유. 그건 테레비에만 나오는 우유.
우리는 가끔 콩맛 나는 사각 플라스틱 팩 부산우유. 빨대도 요령껏 안 꽂으면 마실 수도 없어요.
가끔 부잣집인 약국 딸내미가 바나나우유를 먹고 있으면 다들 한입만 쫌 하며 졸졸 따라다녔죠.)
근데 이 산골짝 사는 일명 골짜기 브라더스-_-들은 가끔 지각을 정말 판타스틱하게 합니다.
책보 울러메고 학교 들어오는 시각이, 한 열시 반쯤 1교시 마치고 끼적끼적 들어올 때가 있었죠.
선생님이 왜 지각했냐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하긴 죽산이나 옹당골, 붕디미 같은 동네에서 역전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올라치면 어른 걸음으로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으니 몇몇은 아침버스 놓치면 아예 학교를 안 왔죠. 김제동씨가 이런 경험을
가끔 방송에서 말하는데 그게 얼마나 공감이 되던지! 교무실에서 아버지가 그 검은색 전화기 핸들을
딸딸딸 돌려서 교환대에 연결해놓고, "사촌리 이장집요" 해서 "그 옆집에 ㅇㅇㅇ이 아부지 좀 대주이소" 하고는
친구 춘부장이랑 통화를 여러 번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덜 학교는 쫌 보내이소. 모내기 때는 효도방학 사흘 쉬니까 그 때 보내 드리니까네..."
(농번기 때는 학교 며칠 쉬던 시절. 저도 아주 어렸을 때에는 양수기 대신 용두레란 걸 봤었죠.
대략 올림픽 지나고 나니까 한일펌프가 들어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수남 하청일이 광고하던...)
그런데 이 골짜기 브라더스 중 한 친구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머리가 그렇게
똘똘한 타입이라거나 운동을 잘한다거나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성실하기로는
소문났던 애였죠.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갈 때도 계속 그렇게 자기는 아버지랑 같이 골짝에 살면서
산먼데기 논 한뙈기 부쳐 가며, 지게질 해 가며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서 살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 국민학교 시절 동창들은 거의 다 도시 고등학교에서 만났었는데, 이 친구는 고등학교까지
촌에서 계속 다니다가 (농과랑 인문계가 같이 있는 소위 '종고') 나중에 연세대를 갔죠. 아마도
농어촌 전형 가점이야 좀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그 친구 성실하니까 하늘이 복을 내린거다. 라고
얘길 했습니다. 합격자 발표나던 날에는 마을회관서 돼지 잡고 동네잔치 했다고 하더군요.
얘 살던 동네에는 귀신도 나왔는데 그 얘기는 글 분위기랑 좀 다르니 다음 기회에 꺼내보고...
(상급생 하나가 실제로 겪었습니다. 죽을 뻔 했음.)
그렇게 성실한 애도 있었지만 저는 어땠냐 하면, 오히려 개구쟁이 축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지발 좀 호작질 좀 고만 지 싸라" 가 울 모친이 입에 달고 살던 소리였으니.
(차마 자기 입으로 문제아란 소리는 주뎅이가 찢어지도 안한다이...
그런데 대부분 한번씩은 유리창 깨먹고 벌집 건드리고 한 경험들은 있지 않나요.)
동구밖에 있던 싸릿대 꺾어가지고 한번에 대여섯 개씩 부러질때까지 맞았는데도 당최 호작질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니 결국 어느 날 읍내 당구장에서 큐대 하나를 들고오시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당구장 가면 움찔.) 그 니스칠 반질반질한 둥근 매차리는 이전에 맞던 빗자루나
싸릿대와는 데미지부터 달랐습니다. 담날 학교 나무걸상에 앉아있기가 지옥이었죠.
지금이야 그 때 밤에 안티푸라민 발라주시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땐 어렸지요)
+
어릴 때 멋모르고 쳤던 장난이 크게 번져서 당황했던 기억은 다들 하나씩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경험이 있으신가요?
전 역전에 정차해 있던 화물 기관차에 실려서 진주까지 갔다 온 게 제일 컸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