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어버이날 기념 - 아부지 엄마 외할매 잡담.

  • 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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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도 다 지나가 버렸지만, 뒷북삼아 쓰는 옛날 얘깁니다.


프롤로그.

일곱살인가 여덟살때인가. 우리집은 학교 사택에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총 학급수 12학급인 단촐한 촌 학교였지요 - 라고는 하지만 그게
면내에서 가장 크고 군 내에서 세번째로 큰 학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도시로 이사오니까 한 반에 60명씩 꽉꽉 찬 것도 모자라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하는 걸 보고 나름 컬쳐쇼크였죠.

어쨌거나 우리 집은 사택이었고,
부모님 두 분 다 그 학교에서 선생님 하고 계셨습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모친이 그 학교 졸업생인데 그 때는 큰외삼촌께서
그 학교 교편잡고 계셨다는 사실. 이거 무슨 프랙탈 구조 이론도 아니고.(...)

사택 옆에 붙어 있는 학교는 사실상 제 놀이터랑 다름없었습니다. 앞마당 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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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父親.

사실 아부지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별 게 없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니
몇 가지 에피소드는 기억납니다.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어느 날, 유치원을 파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갑자기 큰 게 마려웠습니다.
그런데 학교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겁니다. 사실 촌구석에서는 저기 으슥한데 가서
일단 싸고 나서 돌이나 호박 잎사귀로 뒷처리를 해도 별 문제 없지만-_-;
(천연 거름. 어차피 똥장군 지고 가서 비료삼아 논에다 붓던 시절.)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문화시설(....)인 화장실이 학교에 있는데 그걸 이용해야 한다!'

공중도덕을 지킬 줄 아는 착한 어린이. 참 대견합니다.... (쿨럭)

.... 사실 고백하자면, 레버 누르면 물 내려가는 수세식 화장실이 신기했을 뿐입니다. (......)
당시만 해도 수세식보다는 퍼세식이 많았죠. 그나마 외갓집 변소처럼 나무 발판 뉘인 게 아닌
시멘트 바닥에 도기로 된 변기였던 게 감지덕지였던 시절. (이게 왜 중요하냐면 쭈그려 앉았을 때
소변이 앞쪽으로 튀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용무 보면서 휴지통에 일기장 올려놓고 급하게 일기 써도
공책이 안 젖었기 때문입니다.[....])

좌변기는 도시 와서 처음 봤죠.
비데? 그거 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봤습니다.(....)
하긴 저어기 산골짝 브라더스 중 한 놈은 자동차를 열 살때까지 타 본 적이 없었다던가.
(옛날 얘기 같지만 저랑 분명 동갑인 놈입니다....)


여튼. 저는 그 때 매우 자연이 강하게 저를 부르는 걸 느꼈습니다.
오후수업이 한창 진행되는 4학년 2반 뒷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던 아버지께서 저를 한번 슥 쳐다보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니 여그 왜 왔노?"

저는 너무도 당당하게 - 일곱 살짜리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담아 - 크게 외쳤습니다. 딱 한 마디를.


"아빠, 똥!"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3층에 있던 4학년들 - 1반 2반 3반 모두 - 전부 다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옆반에 강진X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내다보더군요. "박선생, 뭐고?"
주번 누나는 숫제 배를 잡고 책상위에서 끅끅거리다가

"샘요, 제가 델고갔다올게요"

하고는 교탁 뒤에 뒹굴거리는 두루마리 화장지 꺼내줘서 화장실에 데려다준 거로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말씀. 니 집에가면 내 좀 보자.)

- 이 국민학교 87년도 졸업앨범 보면, 의자에 앉아서 4열횡대로 각 잡은 사진 말고,
풀밭에서 폼잡고 학생들이랑 선생님 같이 어울려 찍은 사진.... 그런데 그 해 앨범에는
모든 반의 그 분단별 스냅사진에 제가 다 찍혀 있었죠. 학교 안에서 쪼매난 알라 하나가
제 집마냥 노란 쉐타입고 팔짝거리며 돌아다니니까 일로 오이라, 까까 사주께.
(하지만 전빵은 걸어서 한 시간 거리. 과자가 있을 리가. 누나 내 쫌 놔라. 쫌.)
어쩌면 그 누나들은 그냥 동네 돌아다니는 똥강아지마냥 졸업앨범 소품으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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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할매

그리고. 딱 20년이 더 흘러서, 2007년도 하고도 5월.
저는 병역을 마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복학생 아저씨가 되어 완전 캐 삭은 얼굴을 하고서는
손에 꽃바구니 하나 들고 어버이날을 맞아 잠시 고향을 찾았습니다.
고향이라고는 해도 열 살 무렵 대처(大處)로 나온지라 그냥 도시 아파트였죠.
그래도 서울에서 여섯 시간 동안 기차타고 가야 하지만.
그 날 저녁 어머니는 갑작스런 부장회의 때문에 늦게까지 근무하다가 귀가하셨습니다.

"오셨습니꺼."
"어, 니 내하고 지금 촌에 가자."
"외할매 부산 안 가싯는가베예?"
"느그 큰외삼촌이 모시고 갔다가 도로 떨아다놨단다."
"고마 부산서 아파트에 편하게 계시면 괜찮을낀데, 그쟈."
"있을라 카나! 데불다 놔도 부산진서 도로 기차타고 촌으로 올라캐샀능께네 큰생이(큰며느리)도 뭐라 못하드마는. 마아 이 길로 바로 가자. 옷 갈아입을 필요 없이."

그리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촌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문안을 갑니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항상 어버이날이 되면 어머니는 촌에 있는 외할머니 문안인사를 갑니다.
아무리 아프고 날이 궂어도, 제 기억이 맞다면 어머니는 매년 한 번도 어버이날을 빠뜨린 기억이 없습니다.
(위에 쓴 그 초등학교가 있는) 촌에 도착했더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 뒤.

"하늘에 별."
"진짜네.... 울매만에 보노."

외갓집에 도착하니 대문은 훤하게 열려 있고 안채에서 테레비 소리가 납니다.

똑똑똑.

"옴마 있는교."

반응이 없습니다.

"할매 테레비 키놓고 주무시는 거 아입니꺼."
"니가 함 불러봐라."

똑똑똑똑.
탕탕탕탕.

"할매-----"

삐이그더억.

"누고?"
"할매 손자요."

그러자 "아이고오- 니가 서울서 이게 웬일고" 하며 버선발로 출담까지 달려나오십니다.
외할매 쭈글쭈글한 얼굴이 활짝 웃어서 더 쪼그라듭니다. 그렇게 오랫만에 외할매를 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세상 빨리 베리갖고 일찌감치 북망산에 누워계시지만 외할매는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아흔 넘어서는 귀가 좀 어두워져서 전화해도 잘 못알아들으시긴 하지만.
가끔 전화해서 안 계실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저어기 충청북도 구인사던가 어딘가 절에 가 계십니다.
부산 가는 완행기차를 타고, 또 부산에 있는 부전역에서 기차를 갈아 타고, 청량리 가는 밤차로 단양까지.
그걸 보는 모친은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저 낫살 묵고 할마씨 정력도 좋다. 하지만 세월은 속이지 못하겠는지
허리가 쪼그라들어 이젠 내 가슴팍에도 겨우 미칠 법한 할매 정수리. 그걸 보는 내가 조금 슬퍼지려고 합니다.

군불 뜨끈하게 올려 놓고 외할매와 어머니, 이야기 꽃이 핍니다.

"우찌 지내는교?"
"내사 마 뭐 있긋나. 그란데 니가 얼굴이 많이 아이다."
"피곤해서 안글나. 학교 댕기고. 6학년 담임에다가 체육부장 맡아갖고.큰생이(큰며느리 - 여기서는 제 큰외숙모)는 왔다갔는교?"
"하모, 작은생이는 안왔고."
"작은생이야 뭐 작은오빠가 워낙에 그래싸삿제. 뭐 장자 메느리가 챙기모 됐지."

"느그 큰생이가 전복을 갖고 오갖고 동네다 다 나눠줬는데 할마씨들이 이빨이 없어갖고 줘도 묵도 몬하드라."
"아이고 참말로, 그래갖고 다 나나(나눠) 줬는교?"
"하모, 있어갖고 뭐하끼고. 느그도 좀 주까?"
"됐으요. 옴마(엄마)나 마이 잡수소. 우리는 누가 좀 준기 있으서."
"하기사 저번에 모로실 사는 동촌띠기 희수연 거서 문어쪼바리 삶아난그, 그거 내밖에 안묵더라."
"(날 보고)저 봐라, 참 할마씨 이빨 튼튼하당께네. 느그 외할매처럼 건강한 사람도 없을끼다."
"내가 니를 가짓을 때가 그때 전쟁나서 피난갔다가 이내 돌아오고 울매 안 되가가 가짓응께네
그 때 내가 뭘 좀 마이 못 무서(먹어서) 그렇다. 아니믄 니도 좀 강골로 태어났을낀디...."

어머니께서 잔병치레가 좀 많긴 하지만 절대 약골은 아닙니다. 하드웨어는 강골임(......)

- 어른들과 같은 자리에 있으면 매번 느끼는 건데, 참 일상대소사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됩니다.
별거 아닌 얘기지만 재미있게 서로 얘기하다 보면 흥이 절로 붙죠.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대에 살던
어르신들의 지혜가 아닐까요. 다만 우리 이쪽 동네의 경우엔 다들 워낙 목소리 볼륨도 크고 말투도 억세서,
윗동네 서울사람들이 들으면 싸우는 줄 알고 간혹 말리러 오기도 합니다. (...........)

"오랫만에 봤는데 아나, 할매가 용돈 주꾸마."
"아 할매, 괜찮습니더. 에헤. 됐다카이. 은자는 내가 할매 드리야 될 나인데."
" 옴마는 와 또 아한테 씰데없이 줄라카요."
"할매, 내가 나(나이)가 메ㅊ(몇)살인데... 괜찮심니더."
'내가 할매가 되갖고 외손지(손자) 왔는데 그라모 돈푼도 내맘대로 몬 주까이."
"어차피 그거 다 내가 옴마한테 갔다주는 거 아잉교."

.... 어르신들은 내가 나이를 얼마나 먹건, 내일모레 장가갈 나이건 여전히 애로 보일 법하죠.
오고가는 실랑이가 벌어지다가 외할머니가 살짝 역정끼가 나길래 못 이기는 척 집어넣었습니다.
어버이날에 문안 왔다가 길삯 얻어가다니. 참 죄송한 일. 근데 또 그게 우리네 사는 정이죠.

항상 이렇게 어머니께서 외할머니 용돈 드리면 개중에 몇 푼은 나를 통해서 도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예전에는 받아서 '엄마은행'에 저금을 했다면, 이젠 받는 거 자체가 죄송할 따름인 세월이 되었습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도로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치매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나이를 많이 잡수셔서
이제 살짝 아이같은 면이 보이는 할매인지라, 앞에서 재롱떠는 셈치고 받아 둡니다.

"니 얼렁 장개(장가) 가갖고 할매 죽기전에 살아계실 때 붙어가가 서울구겡 시키 드리야 한다."
"암은요."
"아이고 마 됐다. 내 걱정 하지말고."

참, 우째도 준비하는 인생사지만, 엄마 입에서 막상 '죽음'이란 소리 나오니까 기분이 좀 짠합니다. 아직까지는 정정하시지만....

" 니 갖다준 전자렌지 도로 들고가라, 내가 도통 쓸일이 없다."

전자렌지- 라 하면 한옥을 입식부엌으로 개조하던 차에, 내 서울 자취방에서 쓰던 걸 군대가면서 갖다놓은 겁니다.
원래 이모집네 형이 자취방에서 쓰던 물건이니 거진 한 십오륙년 묵은 놈인가 봅니다.
촌에는 도시가스도 안 나오고, LPG통 배달해서 쓰니까 돈아깝다고 어머니가 갖다 놓으셨습니다.
근데 역시 촌 할매라, 테레비 세탁기 탈곡기 넘어가면 도무지 기계라고는 쓰시질 않아서 역시나 거미줄이 잔뜩입니다.

"우와, 할매, 걸레 쫌. 안에 벌거지가 마 완전히 즈그 왕국이네예."
"있어봐라. 내가 닦아 주꾸마."

끙차, 하고 무거운 전자렌지를 들고 동사(洞舍:마을회관) 앞마당까지 와서 트렁크에 싣고 있자니
외할매 18번 레파토리가 다시 시작됩니다. 그걸 듣는 어머니는 참 징그럽게도 말한다는 표정.

"아이고, 장골이다. 은자 쌀푸대도 우꾼우꾼 지고 댕기긋네.
내가 옛날에 저거를 업고 옛날에 데미골 멩도(명도:무당) 집에 우찌 갔으꼬...."
"아이고 옴마 또 그 소리요. 너무 많이 해쌌소."

외할머니는 어머니 핀잔에도 아랑곳않고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아, 그때 업히갖고. 의령 가는 빨간버스 막차 내리가. 그 때가 일곱살이었나."
"하모 하모. 데미골이 거 죽산 버스정류장서 산길로 좀 드가야 있다이가. 안즉(아직)도 기억난다.
막차 끊기고 해는 떨어지가가 밤질(길)에 쌀 한봉다리 들고, 아 들차 업고 초 한묶음 들고 그래가
멩도집에 가는데, 저 어린기 '할매 할매 와 계속 산으로 드가요...' 하고 계속 글캐사서 보채는데
아(兒)가 마 들썩들썩 할 때마다 '아이고 이눔아 아이고 이눔아, 할매 허리 뿌아진다' 캐쌌는데 말다."

그 때가 어렴풋이 기억나기는 합니다. 제가 할매한테 그렇게 물었던 건 그 전날 '전설의 고향'에서
산골짝으로 여우에게 홀려 들어간 어떤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서였죠[.....]

"그때하고 지금하고 벌써 나가 몇 개 차인데예."
"니가 몇살이었노?"
"그때 유치원 졸업하고 일곱살. 그라고 내 지금 스물 일곱 묵었응께네."
" 하이고.... 니캉 세월이 벌씨로 그리 지났다그자."
"멩도할매는 잘 계신답니꺼."
"요새는 가 보도(보지도) 안했다. 마 안즉 안 죽었다 글카드라. 껄껄껄껄."

동구밖에 서서 또 떠들다 보니 반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젠 정말 떠나와야 할 시간.

"할매 갈께예."
"옹야, 급할수록 에둘러가라 캤다. 우째도 운전 조심하고, 잘 가재이."
" 예예. 할매 드가이소. 밤에 춥는데...."
"알았다 할매 드가꾸마."

- 라고는 해도 운전대 너머로 쳐다보면 차가 빨간 꼬리등을 끌고 고개 너머 사라질 때까지
동구밖 바구텀까지 나와 계십니다. 여전히 여섯 시 십 분으로 꼬부라진 허리를 부여잡고서.
괜시리 클락숀을 한번 울려 봅니다. 빠아아앙. 외할매 흔들어주는 손이 백미러로 희미하게 보입니다.

어두운 들판 저 멀리서 진주서 서울가는 무궁화 밤차가 우리 차 경적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뿌아아앙 하고 기적을 울리며 역으로 들어가고, 외할매도 그 적막한 집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어머니와 나는 차 몰고 도시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외할매 오래오래 잘 사이소. 내 취직하고 장가가고 증손주 앵기드릴 때꺼정 오래오래 사이소.


덧,
그러고도 벌써 삼 년이 더 지났습니다. 외할머니는 이제 부산 계시고 시골에는 아무도 안 계신데
이제 전화를 드려도 목소리를 못 알아들어서 직접 뵙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멀리 타향 하늘은 오늘따라 별도 달도 없이 깜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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