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 괴이한 일이 발생했어요.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

  • 스팀밀크
  •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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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집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혹시 제가 점심때 집에 들렸다 다시 나갔는지 묻는 짤막한 내용이었어요.
제가 하루종일 밖에 있는 걸 알면서 참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저녁에 집에 들어와보니, 엄마의 얼굴이 심상치 않고 밥도 없고, 반찬도 없고, 제 방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바나나 4개 중에 2개가 사라졌더군요.
밥과 반찬이 없는 것에 일단 실망, 매일 아침식사 대신으로 먹는 소중한 바나나가 2개나 사라졌다는 것에 또 실망.
배고파서 성질이 드러워지려던 차라 바나나 2개가 갑자기 무척 소중한 듯이 느껴져, 다짜고짜 엄마에게 바나나의 행방을 물었더니
오빠가 집에 왔다가 '제 방에 들어가' 바나나를 먹었다는 것에 오빠에 대한 짜증이 확 피어올랐는데.

엄마가 그깟 바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일단 오빠가 제 방까지 들어간 경위나 들어보라며 말씀을 하시더군요.
경찰이 집에 와서 여기저기 검사하는 데 오빠가 따라붙어가며 들어갔다가, 제 방 책상 위에 있는 바나나를 먹은 거라고. 뭔가 앞뒤 생략된 이 말을 듣고 일단 '경찰' 이라는 단어에 바나나는 뒷전.
궁금증이 생겨 입다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낮동안 괴이하다면 괴이할 수 있고 무섭다면 또 무서울 수 있는 일이 발생했더군요.

경위는 이러해요. 엄마가 목욕을 갔다, 미용실에 들려 오느라 3시간 가량 집을 비우셨대요.
약 1시부터 4시까지.
목욕을 하러 나갈 당시 집에는 엄마 혼자 계셨고, 목욕하는 시간 동안에는 유일하게 집안에 있던 사람인 엄마가 집을 비웠으니 당연히 빈집이었고, 목욕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역시 빈집인 상태였죠.
목욕에서 돌아와 목욕바구니를 욕실에 놓아두기 위해 욕실 문을 열었는데, 눈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욕실 안에 김이 서려 있더래요.
엄마는 속으로 '아니 이상하다, 날씨가 그렇게 더운 것도 아닌데 바깥과 온도차가 그렇게 나나.. ' 생각하며 바구니를 놓아두며 욕실을 둘러보는데.

욕조 안에 가득차 곧이라도 넘칠 듯이 위태로운 물이 눈앞에 들어오며 깜짝.
차가운 물도 아니고, 뜨거운 물이 욕조 가득 차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물이 넘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수도꼭지는 잠긴 상태.
이 부분에 더욱 놀라셨대요. 평소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지 않고, 보통 배수구 캡도 잠궈놓지 않는데 욕조에 물이 가득 차있는 상태도 이상하지만
혹여라도, 정말 혹여라도 목욕가기 전에 실수로 물을 틀어놓고 갔다면 수도꼭지가 여전히 틀어져 있어 물이 넘쳐흐르는 상태여야 하니까요.
게다가 욕실을 수증기로 가득 메운 뜨거운 물이라니.

이상하고, 괴이한 마음에 다소 당황해 있다가 언니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가 놀라면서 혹시 집안에 누군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했대요.
그제서야 겁에 질린 엄마는 오빠와, 경찰을 불렀고 집에 온 오빠가 경찰과 함께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 바나나를 먹은 거였다고.  
경찰이 왔다지만 어디서도 침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없어진 물건도 없어서 별다른 성과없이 돌려보냈구요.

이야기를 듣자 첫 마음으로는 아무래도 엄마의 실수가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조금 있으니 뜨거운 물, 잠겨진 수도꼭지는 정말 괴이하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엄마 스스로도 이야기했듯이 정말 그게 엄마의 실수라면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집에 돌아와서 수도꼭지를 잠근 후, 자신이 잠근 수도꼭지와 욕조 속 물을 보고 놀랐다는 건데...
당신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입원할 정도의 치매 증상이 아니면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된다!

엄마가 의심되는 건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의 짓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궁금하고, 괴이한거죠.
다른 가족들의 알리바이-적어도 집 현관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 포함-는 모두 입증됐으니, 이건 가족 이외 제 3의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건데 욕조 속 뜨거운 물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없었고, 발견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거겠죠. .

저녁을 먹고 쉬는데, 잠깐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2명 있었어요.
한 명은 언젠가의 스토커. 저에게 웃으면서 언젠가 얼음송곳으로 죽임을 당한다면 그건 자기가 사주한 일이란 걸 알고 죽으라고 했던 인간.
음,, 그 자식이 설마 스토킹 10주년 기념으로 욕조속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건가, 근데 그건 얼음송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트릭인데. 뭐 이런 헛생각 1분 정도.
한 명은 새언니였는데요. 유치원 다니는 조카도 잠깐 용의선상에 올려놨었으니 새언니에게 뭔가 억한 심정이 있어서 떠올린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새언니가 엄마한테 "혹시 아가씨가 잠깐 집에 들렸다가 물 틀어놓고 깜박한 채 다시 나간 것 아닐까요?"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싶어 실소.
결정적으로, 새언니는 알리바이가 성립되므로 아웃.

뭔가 그럴듯한 추리를 해서 명쾌한 결론을 얻고 싶지만, 앞으로도 미스테리로 남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무섭고, 괴이하고, 소름끼친다.
그 중에 이런 반응-목욕 못한채 죽은 귀신이라도 왔던 게 아닐까- 흠..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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