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Eco '행복한 나를' 작곡한 분과 그에 관한 이야기
에코는 리키p란 인물이 만든 그룹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리키p는 바로 거리의 시인들의
작곡가이자 리더였고 조이박스와 슈퍼특공대의 리더이기도 했죠.
리키가 남긴 글 중
"리키가 한국에 나와 프로듀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 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끼가 많고, 발랄했던 그 가수지망생 애인을 위해 리키는 그녀를 중심으로 3명의 여자 트리오를 결성했다. 리키가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름을 따온 “에코” 가 바로 그 그룹이었다.
여자가수는 돈이 안 된다던 그 당시의 풍조로, 수많은 레코드 회사로부터 거절당했지만, “에코”는 성공을 거두었고, 리키는 갑자기 음반업계로부터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프로듀서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여기서 행복한 나를이 바로 리키p 작품이죠)
"리키는 이 시기에 유승준, 젝스키스, 소찬휘, 김현정, ses 등을 포함한 수많은 유명가수들의 곡을 쓰고, 랩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타협, 타락한 음반업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배신감 (이때, 그는 애인과 그리고 에코와 헤어졌다.) 이 그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불신과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만을 커지게 하도록 만들었다. "
---아래는 예전 리키p 싸이에 있었다던 글 전체입니다. 특정 인물 이름은 지웠어요
리키는 (한국이름 박기영) 1970년 7월 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재벌” 이라고도 불리는 한국거대기업 총수의 2세인 리키의 아버지는 대단한 학구파로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명문대학의 교수를 하던 중 자수성가한 재일교포집안의 “귀한” 따님과 결혼을 하여서 미국 땅에서 미국인의 국적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강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어머니의 반 일본 감정으로 인한 애국심의 영향을 받아 철저한 한국인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유복한 가정과 축복받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리키였지만, 천부적인 그의 아티스트 적 기질은 그의 유년기를 무척 힘들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교수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한국에서 보낸 리키의 눈에 보인 세상은 “무언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세상” 이었던 것 같다.
의사, 박사, 변호사, 사장을 목표로 끊임없이 학업경쟁에서 승리하기를 요구하는 부모님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간의 오고가는 촌지, 잘 사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편애, 신처럼 떠받들어지다가 어느 날 총 맞아 죽어버린 대통령, 그리고 얼마 후 체육관에서 혼자 출마하고 혼자 뽑혀서 TV 나 뉴스에 도배하듯 나오던 대머리 아저씨. 인간의 탈을 쓴 빨간 늑대와, 여우들로 표현되는 공산당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리키에게 있어서 학교는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편협한 시스템이었다.
그 당시의 “사회가 원하는” 교육을 받아들이기 힘겨워 하던 리키는 진실을 알고 싶은 나머지 교과서가 아닌 도서관의 책들을 선택하였다.
유난히 집중력이 강했던 리키는 동화부터 이념서적까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하루평균 5~6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소위 “밥 먹고 책만 읽던” 리키가 음악에 빠져버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이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회의 현실에서 벗어나 버리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퀸”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저니” 등의 팝송을 달달 외우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학교에서 망신당한 초등학생 리키를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도 기억하겠지....
혼자 “러시아 혁명서” 같은 어려운 서적을 탐독하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게 해대던 리키.
중학교에 가서는 어두운 세상을 탈출이라도 하려는 듯이, 미친 듯이 기타를 치던 리키.
우등생으로 키우려는 부모님께 반항하여, 가출을 밥 먹듯이 하던 리키.
그런 리키를 두고 포기하지 않던 부모님은 리키를 미국의 엄격한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 버렸다.
미국에서의 10년은 리키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음악학교, 레코딩 엔지니어로써의 다양한 경험을 미국에서 한 리키는 그 곳에서 미국사회의 좋고 나쁜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고, 더 넓은 안목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 세상은 넓다는 사실을 피부 깊숙이 느꼈다.
리키는 레코딩 엔지니어 교육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한 밴드 활동과, 스튜디오에서의 경험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 이었다.
90 년대 중반.
리키가 한국에 나와 프로듀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 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끼가 많고, 발랄했던 그 가수지망생 애인을 위해 리키는 그녀를 중심으로 3명의 여자 트리오를 결성했다.
리키가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이름을 따온 “에코” 가 바로 그 그룹이었다.
여자가수는 돈이 안 된다던 그 당시의 풍조로, 수많은 레코드 회사로부터 거절당했지만, “에코”는 성공을 거두었고, 리키는 갑자기 음반업계로부터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프로듀서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리키는 이때가 자신이 아티스트로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기라고 한다.
리키는 이 시기에 유승준, 젝스키스, 소찬휘, 김현정, ses 등을 포함한 수많은 유명가수들의 곡을 쓰고, 랩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타협, 타락한 음반업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배신감 (이때, 그는 애인과 그리고 에코와 헤어졌다.) 이 그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불신과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만을 커지게 하도록 만들었다.
또 다시 그의 이상과는 너무 거리가 먼 현실에 짜증이 나서 리키는, 그동안 하던 모든 음악활동을 접어버리고, 자신만이 원하는 가수들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
미국시민이기 때문에 조준*라고 하는 한국인을 대표이사로 내세워 설립한 법인 “이고 엔터 테이먼트” 는 음반업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더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첫 번째 작품 “거리의 시인들”은 나오자마자 모든 방송국의 심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전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키가 고용했던 매니저에게 믿고 맡긴 거액의 홍보비를, 매니저가 착복함으로서, 시작부터 난항에 빠졌다.
‘거리의 시인들 1집’은 인터넷과 입소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음악이 급속도로 알려져 앨범 판매고가 10만 장을 훌쩍 넘기게 된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리키는 인기그룹 “디바”와 “샤크라”등을 제작한 매니저 회사에게 홍보를 맡기는 계약을 하고, (거리의 시인들 멤버들은 “디바”나 “샤크라” 만큼 자신들도 방송무대에 오르고 싶어 했다.)
“거리의 시인들 2집”과 “조이박스1집”을 제작하였다.
여기서 리키는 2가지 중요한 실수를 하고 만다.
첫째는, 리키가 가수활동을 하는동안 회사의 대표이사로 앉혀놓은 조준*라는 사람이 (그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회사는 관리하지 않고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결국엔 리키의 등에 비수를 꽂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리키가 회사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음악을 만들고, (거리의 시인들 2집에는 멤버들의 의사가 많이 반영됐다.) 활동하였다는, (이때, 리키는 조이박스와 거리의 시인들을 병행하는 잦은 지방공연과 TV 스케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사실이다.
이 두 가지를 이유로 “이고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참패를 면치 못했고, 리키는 자기가 믿고 회사를 맡겼던 대표이사 조준*로부터 겉으로는 “법인카드로 결제하지 않은 회사운영비/ 음반제작비는 모두 공금 횡령한 것으로 치부되니 대표이사인 자신에게 보상하라”는 어이없는 내용의 고소를 당하고,( 회사의 실질적 사장인 리키로부터 항상 자금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당신은 유승준처럼 미국인 행세를 하고, 군대도 안 갔으니 곤란하게 만들겠다!”
는 협박까지 당하게 되고 만다.
리키는 이에 맞서 중대한 결심을 하고, 2003년 한국 시민으로써 귀국신고를 하고 군대에 자원한다.
그리고, 조준*와의 소송에 정면으로 맞서 승리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젠 무슨일이 있더라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겠다고...
현재 공익근무요원인 리키는 그 동안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실력 있는 동지들과 함께 “슈퍼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슈퍼 특공대”와 함께 리키는 이제 하고 싶었던 음악과 생각을 표현한다.
리키는 말한다.
지금부터 자신이 만드는 음악이 사람들의 병든 마음을 치료해 주길 바란다고, 조금 더 깨끗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더 밝게 만들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어린이 들이 웃고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남자가 여자를 위해주고, 절망에 빠졌을 때 나의 소리를 듣고 용기를 되 찾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자기와 함께 시원하게 웃을 수 있어도 참 좋겠다고.....
이때 만든 불후의 명곡 슈퍼 특공대 "내 노래 듣지 마"
http://blog.naver.com/rlaqkqdkdl?Redirect=Log&logNo=6004308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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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키p는 별다른 활동이 없는 듯해요. 제가 마지막 그의 싸이에서 본 그의 마지막 말은
그냥 겸손하게 자신은 별 거 아니고 평범하게 산단 식의 말이에요.
거리의 시인들 멤버 중 김신교와 노현태는 CODE 뭐라는 괴이한 그룹을 둘이서 만들었다가
아작났고 노현태는 대운하 찬양 노래부터 시작해서 청와대의 그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죠 -_- 가끔 연예인 야구단에도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