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 Dune (1984)

2024.08.13 22:41

DJUNA 조회 수:1111


데이빗 린치의 [사구]를 영상자료원에서 보았습니다. 전 이 영화의 극장개봉판, 앨런 스미시 버전, 여러 팬 에디트를 꾸준히 보아왔지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건 처음이에요. 블루레이를 틀어준 것이긴 하지만요. 이번에 틀어준 건 극장 개봉판입니다. 영상자료원에서 린치 특별전에서 정식으로 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버전.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망한 영화죠. 린치가 [제다이의 귀환] 감독 제안을 포기하고 디노 데 라우렌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들었는데, 제작 환경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결국 두 시간 살짝 넘는 버전으로 편집된 영화는 흥행에서 죽을 쑤었고 비평가들도 싫어했습니다. 많이들 린치(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린치가 발굴한 카일 맥라클렌)의 경력이 끊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물론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몇 년 뒤 [블루 벨벳]이 나왔으니까요.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비디오 출시작이 [사구]여서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죠. 아시다시피 이 영화 전에는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가 만들려다가 포기했고요. 이 영화까지 죽을 쑤자 [듄]은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이라는 말을 들었지요. 하지만 그 뒤에 텔레비전 시리즈 하나, 빌뇌브 버전까지 나왔으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잘 만든 영화냐. 절대로 아닙니다. 애당초부터 '걸작'을 의도한 영화도 아닌 거 같습니다. '진지한 걸작'에 대한 욕망이 있는 빌뇌브의 영화와는 달리 린치의 영화는 대놓고 키치하고 천박하고 요란해요. 그리고 제가 여러 차례 말했듯 그런 의도로 그린 린치의 세계는 여러 모로 빌뇌브의 세계보다 허버트의 세계에 더 가까워요. 아직도 귀족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세계는 당연히 린치가 그린 것과 더 비슷하겠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미술이에요. 바로크 시대에서 20세기 파시즘 시절을 커버하는 재료들로 구성된 잡다하지만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물건들로 구성된 박물관이죠.

캐스팅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호세 페러와 같은 클래식 할리우드 배우도 있고, 프란체스카 아나이스, 케네스 맥밀란과 같은 흥미로운 영국 배우도 있고, 막스 폰 시도프, 실바나 망가노, 위르겐 프로흐노와 같은 유럽 배우들도 있지요. 카일 맥라클렌, 패트릭 스튜어트와 같은 배우들은 이 영화 이후로 떴고요. 아, 그리고 스팅도 나와요. 그리고 연기 보는 재미도 상당하거든요. '명연기'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하코넨을 연기한 케네스 맥밀란과 같은 배우는 정말 온 몸으로 자기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뻔뻔스럽게 즐기는 것이 보이고 그 재미가 스크린에서 흘러나옵니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종류의 재미죠.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받는 부분은 대체로 시각효과, 각본, 편집입니다.

시각효과는 여러 모로 당시 기술의 한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나온 훌륭한 시각효과도 많지 않냐고요. 하지만 [사구]는 통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시도했습니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지만 말아 먹은 장면들이 많죠. 전 그런 것도 지금 보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각본과 편집의 문제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가 봐도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의 각색은 두 시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야기가 흐르고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두 시간보다 살짝 긴 정도로 잘라버렸으니 이야기가 덜컹거리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감독이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한 경우는 더욱 그렇고. 여기엔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당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배경인 이런 영화를 관객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정보제공용 대사가 엄청나게 많아요. 이야기를 정말 초보적인 수준으로 풀어 설명하려는 장면도 많고.

이 문제의 일부는 긴 러닝타임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앨런 스미시 버전으로 꽤 많은 소스를 갖고 있지요. 전 처음 앨런 스미시 버전을 보았을 때 극장판엔 없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영화의 빈 칸을 채워준 것에 만족했어요. 이룰란 공주를 지우고 그 자리를 채운 프롤로그는 정말 싫었지만요. 린치는 이 영화의 감독판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튜브에 있는 팬 에디트도 그 정도면 괜찮아요. 꼭 린치를 불러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24/08/13)

★★☆

기타등등
1.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영화입니다. 84년 12월 개봉.

2. 버지니아 매드슨이 토토 음악 배경으로 책의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두 시간짜리 영화여도 전 좋다고 봤을 거 같긴 합니다.


감독: David Lynch, 배우: Francesca Annis, Leonardo Cimino, Brad Dourif, Jose Ferrer, Linda Hunt, Freddie Jones, Richard Jordan, Kyle MacLachlan, Virginia Madsen, Silvana Mangano, Everett McGill, Kenneth McMillan, Jack Nance, Sian Phillips, Jurgen Prochnow, Paul Smith, Patrick Stewart, Sting, Dean Stockwell, Max von Sydow, Alicia Roanne Witt, Sean Young

IMDb https://www.imdb.com/title/tt3308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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