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수중에 들어온 지 5일이 지난 오늘.

그간 10분 이상 자전거를 탄 적이 없어 슬슬 조바심이 나던 차.

조바심을 못 참고 집 근처나 살짝 돌고 와야지 싶은 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멀쩡히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 헤딩한 후

동네 주민들의 눈길에 쫓겨 후다닥 집으로 도망와 울적해하던 게 어제 오후의 일입니다.

 

오늘부터 주말까지 내리 비가 온다는 소식에 의기소침해 있던 중 저녁을 먹고 하늘을 보니 몇 시간은 비가 안 올 것만 같아..

부푼 희망을 품고 오늘에야말로 제대로 좀 타봐야겠다 싶어 옆동네 친구에게 제발 나 좀 데리고 자전거 도로에 가줘.. 냄새 폴폴 문자질을 보낸 후,

슈퍼인지 문구인지 식당인지 애매모호한 우리동네의 모가게 앞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하고 나이스 타이밍으로 친구와 조우한 게 저녁 8시. 

 

긴장 탓인지 설렘 때문인지 분간하기 힘든 정신상태로 친구의 꽁무늬를 열심히 따라 10분 정도 달리니 자전거 도로 입구.

아, 드디어! 싶던 찰나 얼굴에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

마침 근처에 있던 간이 공중 화장실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어떻게 할지를 이야기하다 혹시라도 비가 더 오기 전에 다시 돌아가자고 합의하고,

핸들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데 채 50m도 가지 않아 갑자기 헤비급 빗방울이 온몸을 난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 어떻게든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 싶어 멈추지 않고 되는대로 폐달을 밟았습니다.

눈화장과 빗물이 범벅되어 눈은 제대로 안 떠지고 고작 몇 분 사이에 운동화에는 물이 흥건하게 들어차고 머리는 미역괴물처럼 얼굴과 목덜미에 달라붙고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싶어 길가에서 아..아...아.....아!!! 소리치다 입술을 깨물며 실실 웃다 널뛰기하며  악에 받쳐 달리고 달렸습니다. 

언덕길에 부딪혀서도 그깟 오르막 따위 다 죽었어! 모드로 순식간에 올라가고 (어제만 해도 작은 도랑앞에 좌절하던 나인데...)

조금 돌아가더라도 차가 많이 오지 않는 골목을 골라 질주한 후 집에 도착.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직행해 샤워한 후 머리를 말리다가 오른쪽 손목이 쓰라려 살펴보니 그새 어딘가에 쓸려서 속살이 드러나 있군요.  

오늘 아침에 전철에서 생긴 왼쪽 손목의 상처와 데칼코마니처럼 똑 닮은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그런데 빗속을 질주하는데 손목에 상처가 생길 이유는 없을 텐데 싶어 의아해하다가

앞으로 이깟 상처따위는 아무렇지 않을 크기와 정도의 상처들이 많이 생길거란 생각에 뭐 다들  다치면서 자라는 거라는 결론을 내봅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자전거 한 번 제대로 타기가 왜이리 힘든 걸까요.

넘어지고 엎어져서 긁히거나, 멍들거나 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 다 감수하고라도 제대로 한 번 탔다 싶은 마음을 느껴보고 싶을 뿐인데.

날씨가 너무 야속합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를 얻어 맞아본 것은 처음인데, 누가 보면 실연당하고 빗속에서 악쓰며 울면서 질주하는 줄 알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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