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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새 월화극 '기황후', 역사 왜곡이라고?

기사입력 2013-08-28 10:16

배우 하지원, 주진모이 주인공으로 나선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역사 왜곡 의혹을 사고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인물을 내세워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 역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울대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를 향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반박, 근거를 설명했다.

먼저 공녀 차출에 대한 배경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원나라는 처음 고려 처녀의 징발을 요구한 1275년 이래, 80여년에 걸쳐 계속해서 공녀를 요구했다. 이후 고려여인을 아내로 갖는 것이 원나라 대신들 사이에 일종의 유행이 됐고 원 조정에서 요구하는 공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대신들, 관료, 장군들이 개인적으로 공녀를 요구하기까지 이르렀다는 것.

때로는 국왕과 왕비가 원나라에 행차할 때 원나라가 요구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양가의 처녀를 징발, 공녀를 바치는 경우까지 생겨나 공녀징발로 인한 피해는 실로 컸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공녀차출이 금지되는 때가 바로 기황후가 권력을 가진 순제 때다. 뿐만 아니라 원 내부에서 종종 제기되던 입성론, 즉 국호를 비롯해 고려에 대해 어느 정도 부여한 자주성을 인정하지 말고 고려를 원에 속한 하나의 성으로 만들자는 입성론 논의도 당시에 이르면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이강한 교수의 설명이다.

때문에 기황후가 고려에 미친 영향은 고려를 원에 직활지로 편입하려고 했던 입성론을 영원히 폐지시키고, 그 자신이 끌려갔던 공녀나 환관의 불법적인 징발은 축소되거나 금지됐다. 이후 원의 정치적 간섭이나 경제적 수탈 역시 줄어들었다.

더불어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의 총명함도 높이 샀다. 이 교수는 증거로 원사(元史) 기록을 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황후는 순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식견과 총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재상들을 적재적소에 앉히며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원나라 말년 대규모의 기근이 들어 대도 안에서만 20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시체가 나뒹굴었다. 기황후의 명으로 시체들을 운반해서 경도 11문밖에 묻어 수습하고, 기황후의 자금내원인 자정원에서 막대한 돈을 풀어 구호사업도 함께 펼쳐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럼에도 불구,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에 대한 기록이 부정적으로 남을 수 없는 이유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 조정 핵심에는 고려 사람들을 배치시켜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는다. 원나라 입장에서는 여자이며 고려인에게 정권을 빼앗긴 상황이기 때문에 기황후를 좋게 묘사할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황후에 대해 서술한 원자료인 원사와 고려사는 모두 기황후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두 사서는 기황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전부 봉건적인 유학의 관점에서 씌어진 것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학의 입장에서는 기황후를 부정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고려에서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도 있다. 원나라의 갖은 수탈과 고초를 겪은 입장에서 원의 황후인 기황후를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기황후도 원나라 황후 입장으로서 고려에 불리한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역시 큰 몫 했으며, 때문에 기황후를 단순히 고려의 여인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기황후의 오빠 기철도 부정적으로 보는 데 한 몫을 한다. 원 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은 기철은 고려 내에서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며 많은 횡포를 부린다. 기황후도 그 사실을 알고 자기 친족들의 불법행동을 자제시키는 편지를 고려에 보내 경고하기 한다.

충혜왕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 역시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이는 이강한 교수의 논문 '고려 충혜왕대 무역정책의 내용 및 의미' 와 안재민 저의 논문 '충혜왕의 복위와 조적의 난'을 토대로 한다.

1. 충혜왕, 파탄 난 고려의 경제를 재부흥시킨 주인공

충숙왕은 원나라의 강요로 왕권을 넘겨야하자 심양왕 왕고보다는 자신의 아들 충혜왕에게 넘기는 게 좋다고 판단한다. (충혜왕 나이 16세에 불과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고려 조정을 뒤에서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충혜왕은 충숙왕의 예상과 다르게 선왕의 측근들을 내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 충숙왕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에 충숙왕은 입성책동을 일으키고, 충혜왕을 압박한다. 하지만 충혜왕이 행성설치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편지를 원의 중서성에 보내어 원이 충혜왕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실패로 돌아간다.

후에 다시 왕위에 오른 충숙왕은 충혜왕의 측근들을 조정에서 쫓아내고 자신들의 측근들을 고위 자리에 앉힌다. 이 과정에서 이르기까지 충숙왕은 원에서 철저히 친원적인 성향을 띠었다. 자신의 모후이자 몽골출생인 의비를 들어, 자신을 쿠빌라이의 외손이라 치켜세운다.

반면 충혜왕의 어머니는 고려 출신의 공원왕후다. 몽골인을 어미로 둔 충숙왕과 고려인을 어머니로 둔 충혜왕을 놓고 본다면, 어느 누가 더 고려를 생각 했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충숙왕은 얼마 가지 않아 죽고, 충혜왕이 다시 복위하고 충숙왕 세력을 몰아내고 자신의 친위세력 구축에 나선다.

충혜왕은 왕권강화(금령11조 포함)에 노력, 만성적인 왕실재정의 결핍을 해결, 재정을 확보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왕권 강화는 원의 정치적 간섭을 피해 보려는 의도로 원과의 갈등을 불려 일으킨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 전 고려는 무역이 활발한 편으로, 경제가 부강한 국가였다. 이를 안 원나라는 해금정책(해상무역 봉쇄)과 강남상인의 고려 출입을 금지시킴으로 고려의 경제를 악화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타계한 왕이 바로 충혜왕이다. 충혜왕은 육로를 개척하고 회골인(위구루인)과의 무역을 활성화 시킨다. 그 결과로 고려의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는다.

충혜왕이 흔히 알려져 왜곡된 이미지의 주색에만 빠져 사는 왕이었다면, 고려의 경제가 다시 활발해지고, 고려를 원나라의 한 행성으로 만들어버리려는 음모를 막을 수 있었을까.

2. 경화공주 강간 사건의 진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고려는 관례적으로 고려왕과 원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가 왕이 돼야 마땅했다. 충혜왕은 고려인을 어머니로 두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충숙왕의 비이며 원나라 경화공주 세력과 충혜왕 세력이 부딪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 바로 경화공주 음행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실은 안 조적은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을 고려왕으로 옹립시키기 위한 난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세력에는 심양왕파와 경화공주파가 뒤섞어 있고 난이 진압되고, 처리되는 과정에서도 충혜왕은 심양왕파와 경화공주파를 구분하여 처리한다. 심양왕파는 왕고를 고려왕으로 만들기 위해 경화공주파는 자신들의 세력 확장이 목표로 두 세력은 필요에 의해 뭉친 것)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우선적으로 원으로부터 왕위계승을 승인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경화공주와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충혜왕이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경화공주를 겁탈했을까'하는 의문점이 든다.

그리고 경화공주는 음행당한 사실을 무슨 이유로 조적에게 알려 공론화시키고 조적은 어떻게 그처럼 신속한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었을까? 조적과 정동행성 관리들은 모두 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조적은 원에게 보고도 안하고 즉시 군사행동을 나선 것을 보면 이미 원과 사전양해를 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보면 이 사건은 단순한 음행사건이 아닌 조작된, 충혜왕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은 것 같다. (실제 겁탈시도가 있었는 지 불분명하다. 조적의 난 진행과정이나 처리과정에서 이 사건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기 충혜왕과 관련된 기사 가운데 상당수는 음행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음행기사들은 충혜왕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후대사가들에 의해 과장되거나 두드러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충혜왕의 개혁정책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기득권세력이 사건을 과장되게 부풀려 소문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로 '고려사 충혜왕 후 4년(1343) 계미년 9월 경인일. 밤에 악소배 봉골(鳳骨) 등 세 명이 왕을 사칭하고 주부(注簿) 공보(孔甫)의 집에 들어가 그 처를 간음하자 행성(行省)에서 그들을 체포해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충혜왕을 사칭하고 다니며 간음 했던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언론이 발달하지 않은 환경 속에 충혜왕이 간음했다는 소문이 나면 백성들은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다.

고려왕실에도 수계혼이 있었다. 수계혼이란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은 친어머니를 제외한 아버지의 처를 처치할 권한을 갖는 것. 혹은 이들과 혼인하거나 이들을 타인에게 가취시 킬 수 있다는 관습법 중 하나이다. 충선왕도 충렬왕이 죽은 후 서모인 숙창원비를 맞아 숙비로 봉한 사례가 있다. 지금의 윤리관습으로 말이 안 되지만 고려시대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풍습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윤리관습으로 고려 시대를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충혜왕은 자신의 어머니인 공원왕후를 아버지 충숙왕의 정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경화공주를 정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후궁으로 여겼고 수계혼으로 맞이 하려고 했던 것이다.

3. 충혜왕의 폐위

원나라가 충혜왕을 폐위한 이유는 폭정과 음행이 너무 심해서 일까, 원나라가 음행을 일삼는 충혜왕으로부터 고려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그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은 지도자가 독재를 펼쳐도 친미노선이면 건드리지 않는다. 이유는 자국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민주정부라도 반미노선을 걸으면 CIA공작을 통해서 민주정부를 붕괴시킨다. 칠레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킨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충혜왕은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원에서 독립 자주적인 노선을 걸으려고 했다. 때마침 백안을 물리치고 새로 집권한 탈탈은 정치개혁적 차원에서 이전과 다른 조치를 단행한다. 주요정책 중 하나는 백안과 연철이 만들었던 여러 무역관련기구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 정책은 무역정책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충혜왕의 정책과 번번히 마찰을 일으켰다.

결론적으로 원의 입장에서는 충혜왕이 펼친 왕권강화정책이 원에 반하는 정책(반원정책)이었기에 제거한 필요성을 느꼈고 폐위한 것이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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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럴때 "아 00배우는 왜 이런 드라마를 골라서!!"라고 쉴드아닌 쉴드라도 쳐주겠지만 하지원한테는 해줄 말이 없네요. 선구안이 그냥 망한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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