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8 02:54
아주 아기때부터 저희 집 골목 부근에서 밥을 나눠주던 길고양이가 있습니다.
노란색 털무늬에 약간 붉은 기가 있어 꼭 염색이라도 해놓은 것 같은 쨍한 노란 색깔의 고양이예요.
녀석이 어찌나 똑똑하고 야무진지 이 골목길에 밥 주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로 나름 예쁨 받고 있었어요.
퍽 서열도 쎈지 다른 녀석들하고도 싸우는 걸 종종 봤는데 늘 이 녀석이 이 골목을 장악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안 보이던 녀석이 오랜만에 나타났길래 보았더니
너무 마른거에요. 살이 통통하게 올랐었는데...
돼냥이 되어 가네? 하고 웃었던게 고작 삼사일 전이예요.
좀 이상해서 사료를 좀 부어줬는데 허겁지겁 먹으려고는 하는데 전혀 사료를 씹지 못하더라구요.
입안에서 굴리다 튕겨 나가고, 또 튕겨나가고...
녀석도 답답한지 냥냥 한숨 쉬듯 울길래 일단 캔 하나 까줬더니 국물을 낼름 다 먹어치우네요.
뭔가 치아 손상이 있는건가 싶어서 보는데 송곳니는 확실히 보이지만
다른 이는 아무래도 안보여요. 이갈이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요.
안그래도 이사갈 날이 얼마 안남아 녀석과 슬슬 작별 절차를 밟으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게 좀 짠해요.
길고양이의 삶이라는 게 고단하고, 또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워낙 활발하고 잘 놀던 녀석이 하필 헤어질 때 되어서 이렇게 비쩍 말라 사료도 잘 먹지 못하는 걸 보니 싱숭생숭 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먼저 정 떼고, 이별하기냐? 하고 꽁하게 말했는데
이 녀석이 길다란 너트 볼트를 물어다 줬어요.
진짜 물어다 줬어요...;
아마 저 먹으라는 거지요?;
아님 이거나 먹고 꺼지란 건지...ㅎㅎ
여건이 되면 들여서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였는데
정드니 이별이네요.
혹시 병들어 죽는다해도 그것이 길 위의 묘생이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와 지내는 동안 행복했다고 믿어요.
2013.06.28 02:58
2013.06.28 03:01
2013.06.28 08:57
2013.06.28 11:13
2013.06.28 08:58
2013.06.28 09:06
2013.06.28 10:14
2013.06.28 11:12
2013.06.28 11:24
2013.06.28 15:11
2013.06.28 11:35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8751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7317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7487 |
» | [냥소연] 밥을 주던 길고양이와 헤어져요 [11] | 보타이 | 2013.06.28 | 25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