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넘었지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아이와 알고 지낸 지가 올해로 정확히 13년이 되었어요.

줄곧 연락을 취했던 건 아니고, 중간 중간 여백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애는 나의  몇 안되는 '친구'였어요.



가세가 기울어서 원치 않는 대학을 가야했기 때문에, 어리석긴 했지만 아무 랑도 섞이기가 싫었어요. 원래는 외국대학에 

갈 생각이었어서 갔다가 중간에 귀국하는 바람에 중간에 붕 떠서 애들이 나보다 나이도 한 두살 어렸고. 

그렇게 과애들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그 애는 서글서글 먼저 말을 걸어 오더군요.

보기에는 펑크락을 할 것 같이 생긴 아이였는데, 맨 뒤에 쭈뼛쭈뼛 서 있는 나한테 껌을 먹으라면서 손바닥 위에 쥐어주더군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더니, 그럴 땐 고맙다고 하고 먹으면 되는데. 그러더군요. 아카시아 향이 나는 옛날 껌이었는데

한동안 껌종이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녔어요.



어느 날엔가는 노트를 찢어서 나를 그렸다면서 이상한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건내줬어요. 잘봐야 페르시안으로 봐줄 수 있는 

정도에 만화 고양이. 나 고양이 하나도 안닮았는데. 하니까 그래서 고양이를 안 고양이 같게 그렸잖아요. 그러더군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디테일이 나랑 닮았더라고요. 고양이가 막 귀걸이도 하고. 그걸보니까 갑자기 깔깔 웃음이 나와서 

'내가 이렇게 생겼어?' 하면서 하이톤으로 대답을 하면서부터 친해졌어요. 원래 목소리는 하이톤인데, 학교에서는 차가운 척 하느라

목소리를 늘 깔곤 했는데, 그 날 부터는 막 원래 목소리가 나왔던 것 같아요.  



원래 밥 혼자 먹었는데 학관에서 밥도 같이 먹고.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가끔은 집에도 같이 가고 그랬어요. 같이 갈때면 이어폰을 한쪽 씩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 우울한 대학생 코스프레 역할이었기 때문에 음악도 류이치 사카모토를 많이 들었어요. 쳇베이커도 많이 들었고.

걔는 가끔씩 자기 어렸을 때 사진도 보여주고, 그때 사귀던 여자친구 사진도 보여주고 그랬어요.

여자친구가 그 애랑 많이 닮았더군요. 비슷한 사람끼리 사귀는 구나. 하고 말했어요.  

하루는 학교에서 집에 오는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둘이 피씨 방에서 밤을 샜던 기억이 있어요. 실은 뭐 택시를 탔어도 되었을 텐데 그냥 같이 놀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과에서 유일하게 이야기를 하던 아이였는데, 걔가 군대에 가버리자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고

그 애의 펑크락 친구들이 간간히 내게 말을 걸어오긴 했는데 걔하고 만큼 친해질 순 없었어서 그냥 그 상태로 졸업을 했어요.

연락하는 애 하나 없이 그렇게 혼자만의 인생을 살았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언젠가 부터 난 삶에서 밀려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뭐든 능동적으로 되진 않았어요.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서인데, 증명서를 뗄 일이 있어서 모교에 들렀다가 우연히 학교 앞에 놀러온 그 아일 만났어요.

뭐 알아채지 못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눈에 띄는 차림새... 나는 걔가 생긴 것 마냥 굉장히 특이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멀쩡하게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를, 그것도 몇년 째 성실하게 다니고 있더군요. 

오랫만에 만나서 술을 마시고 이야길 하는데 그때 처음 들었어요.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오래 전부터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어머니와도 인연을 끊고 산지가 오래되었는데,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가 그랬대요. 처음에는 니가 특이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다른사람과 다르다는게 불편하다고.

헤어지면서 이를 악물었대요. 최대한 평범하게 살겠다고.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서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자세히 여기에 쓰긴 어려운 가정사가 있어서 듣는 데 그냥 내가 막 슬퍼서 눈물이 펑펑 났어요. 대학 때는 그렇게 까지 얘길 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만 힘든 줄 알았더니,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어요. 그 앤 그냥 덤덤하게 얘기를 했는데 혼자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자긴 이제 눈물이 안난대요.

그리고 간간히 힘들때마다 우리가 같이 듣던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도 플레이 리스트에 있다면서 mp3를 보여줬어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tango, 쳇 베이커의 노래 제목들...이 주르륵 떴어요.

그 날 이후 잊고 있던 노래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오랫만에 그 아이를 만났어요.

그런데  갑자기 발음하기도 어려운 낯선 나라로 떠나기로 했대요.

아버지의 나라도 아니고 무슨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두달 후에 간대요. 

평범하게 살겠다는 목표로 수년 간을 그래왔는데, 갑자기 이게 뭔가 싶었대요.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어요.

난 니가 나한테 껌을 건낼 때 부터 알아봤었는데 넌 너를 몰랐구나. /아니 실은 나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 나라는 너한테 어떤 의미야? /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냥. 



나는 그 아이가 왠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기도 하고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걔가 떠날 때가 오고 작별 인사를 해야하면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친구가 없어질 것 같아서. 걔가 떠난 이후로 발음하기 어려운 그 나라는  어떤 그리움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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