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생각해도 기분이 묘해서 주절주절 써봅니다.

 

저상 버스는 아니고 계단이 두 개 있는 일반 버스였어요.

버스 운전기사석 두 칸 뒤, 그러니까 바퀴 때문에 자리가 조금 높은 곳 말고 그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어요.

창문이랑 창문 바로 아래 차 벽면에는 노약자석이라는 표시가 붙어있긴 하지만 의자 커버는 그냥 일반 회색인 자리였죠.

 

창 밖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 타는 걸 봤어요.

몇 사람이 올라오고 그 뒤 버스를 타는 어떤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랑 눈이 살짝 마주쳤는데요.

그 분이 대뜸 창문 밑에 노약자석임을 알리는 노란색 스티커를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더라고요.

그래서 전 아저씨를 0.1초 쳐다보다가 냉큼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 조금 뒤에 서서 집까지 왔는데요.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일단 그 아저씨는 나이는 지긋해보이시긴 했는데 건강하신 것 같았어요.

옷도 정장에 바바리코트까지 챙겨 입으시고 티끌 하나 없는 진고동색 구두를 신으셨고요.

 

전 일단 임신부한테는 자리 양보 잘 하는 사람이에요.

딱 봐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되는 분한테도 자리 양보 하고요.

하지만 아줌마 아저씨한테는 음...솔직히 반반인 것 같아요.

 

일단 그 자리가 노약자석이니까 저보다 연장자이신 분이면 양보를 하는 게 맞죠.

제가 그 자리에 앉았을 때는 양보한다 생각하고 앉아야 하는 것도 맞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양보를 하는 건 좀 이상해요.

 

아저씨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신 자리 좀 양보를 해달라고 했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앉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으면 찜찜한 기분이 안 들었을텐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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