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제목의 하루키 소설을 읽은 건 아니지만 요즘 꼬여가는 연애사 때문에 심란해선지 문득 그녀석이 생각나네요.

 

   스물둘일 때 갓 입학한 새내기였던 그녀석을 꼬신 건 저였어요. 제겐 지극히 평범한 문과 남자가 가는 과처럼 여겨지던

사회학과였고(편견돋는 발언이지만 전 국문과 남자들의 콧방귀도 안나는 일련의 또라이짓거리들에 질려 있었답니다), 

시골 내려가면 잔디 깎아야 된다 했으니 적당히 부유한 집에서 굴곡 없이 별다른 트라우마 없이 자랐고, 축구 말곤 특별한

취미 같은 것도 없고,  엄마가 백화점에서 사준 옷을 정갈하게 빨고 다려 입는 되게 청량하고 퓨어한 아이였는데 그런게 다

너무 좋아서 제가 막 대시했었드랬어요. 저도 어릴때라 누나놀이에 푹 빠져서 '리드해야해!'하는 욕심에 손도 먼저 잡고

뽀뽀도 먼저 하고 그랬죠. 하루는 쬐꼼 야한 짓을 하자고 꼬셨는데 애가 패닉상태에 빠져서 한 말이 두고두고 전설아닌 레전드.

 

-누나, 알퐁스 도데의 '별' 아나?(창원애라 사투리가 심했죠)

-어, 아, 알지-_-;;

-내는, 모든 연애가 다 그런 건줄 알았다.......이런 건지 몰랐다...

 

이후로 제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석의 별명은 '핏덩이'가 되었답니다-_-. 되돌아보면 걔한테 전 대체 무슨 짓을 한건지...........

6월말 기말고산데 현충일 새벽부터 중도에 자리잡고 있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1학년 교양 성적 따위

누워서 떡먹기라고 말했는데 어찌나 꿋꿋하시던지(그치만 성적은 피둥피둥 논 저보다 훨 낮게 나왔-_-...전형적인 공부

열심히 하는데 요령이 없어서 성적 안 나오는 타입).

어쨌건, 저따위가 조련하기엔 너무나 맑고 굳고 빈 대같은 아이여서 석달쯤 후 제가 깨끗이 손 털고 물러났습죠. 헤어지면서

'만나면 꼭 인사하자' 라더니, 학교에서  고갯길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나아!' 하고 부르곤 도다다다 달려와 어깨 탁 치고

쌍큼하게 손인사하면서 환한 스마일. '안녕?' ................야, 헤어진 전여친은 불러세워서 인사할 필요까지는 없는 사이거든-_-?

 

 

이후로 그냥 '나는 그냥 나같은 루저 나같은 덕후 나같은 한량 나같은 개를 만나야해ㅠㅠㅠㅠㅠㅠㅠ' 라는 묘하게 굳건한

연애관이 생겼지요, 내인생에 청량한 연애따위 개나줘.

그렇게 흘러흘러 몇 번의 연애를 더 거치고 나니 취향이 굉장히 디테일+확고해져 있더군요.

 

1 말랐고, 쌍꺼풀 없고 처진 눈, 수염이 풍성(복실복실 대걸레머리마저 잘 어울리면 퐝타스티끄)

이렇게 생겼으면 일단 호감이 생기고

 

2 책읽는 걸 좋아하고 영화 취향이 맞기 시작, 거기다소주를 사랑

이중 하나만 맞아도 급 연애가 시작돼요(그래요 전 금사빠u_u..............)

여기 스텝 원, 투까지는 건강한 연애의 전제가 될 만한 조건들인데 스텝 3가 제 연애사를 꼬는 주범이죠

 

3 왠지 박복해 보이는 타입, 유약, 심약, 그러나 다정.

 

  이런 타입들하고 유난히 의기투합이 잘 된달까, 찌찌뽕이 잘 된달까. 그런데 이런 타입들과 하는 연애는 하나같이

끝이 기기묘묘해요. 니들이 나를 작가만드는구나 언젠가 내 이 소스들을 소설이나 시나리오에 낱낱이 써먹어

만천하에 까발리리..하고 지금도 잘근잘근 엄지손톱을 씹을 정도죠. 지금도 위기인지 막바지인지, 좀 별로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는 있지만. 왠지 그옛날 핏덩이와의 연애에 K.O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 팔자 지가

꼰다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취향을 바꾸려면 내가 바뀌어야 하느니, 바라건대 상큼한 청춘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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