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권유를 걸쳐서 자유기술이라는 방법이 제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게만 효용이 있는 도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사실은 꽤 참담하고 외로운 감정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과 다르길 바라면서도 같길 바라는데, 저도 그와 다를 바 없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같다고 편안하게 생각해왔는데 다른 부분과 같은 부분에 대해 고심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더군요.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니까 각각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점과 같은 점이 일치할리는 없지만.


가끔 저와 만나는 사람들은 제게 외로웠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아무래도 그 요는 '너가 나와 대화하는데 하는 말이 많은걸 보니 지금까지 하고픈 말들을 참아왔고 이는 네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특수한 상태로 보인다'라고 추측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언제나 말이 많아요. 곰곰히 따져보니 살면서 말수가 적었던 적이 없었어요. 아무래도 말이 많은 이유는 생각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생각이 많다면 종이 몇 쪽 정도 채우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이 적다는 것을 유추하게 되고 그게 저와 다른 사람들과의 다른점이라는 걸, 저를 외롭게 만드는 점이라는 걸 알았어요. (아니면 생각은 많은데 말만 적고, 그 차이가 저를 외롭게…) 하지만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생각이 적다는건 생각이 작다는건 아니니 많고 적음은 그 각각의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꽤 잉여력 겨루기나 폐인질 겨루기를 하면 4년전에는 내세울게 없었지만 지금은 상위권은 아니지만 수능으로 치면 4-6등급 정도는 얻을 수 있을꺼에요. 하지만 그에 대해 고백하거나 이야기한다는게 제게 효용이 없을꺼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듀게에다 그런 이야기를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저는 어떤 위기가 닥칠때 그 위기를 공개된 게시판에 올리기가 꺼려지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에 대해 꼭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극복의 도구를 팔아먹기 위해 게시판에 올리는건 아니에요. 사람은 서로 매우 다르고 결국은 각각의 극복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위기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We Are the Ones We Have Been Waiting For'란 경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전 그저 글로 삶을 치환하면서 그에 대한 재인식과 재구축을 확정된 독자를 통해 써보고 싶기 때문에 듀게에 쓰게 될 거에요.


어쨌거나,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 년도의 반 년 정도를 위에서 언급했던 수렁에서 깔끔하게 빠져 나온다면 그에 대해 꾸준히 쓰게 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제 못난 부분들은 듀게에 올리지 않았지만요.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서는 제게 못난 부분은 아니니까 결국 올리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과거의 자신의 못난 부분도 현재의 자신에게 속하므로 못난 부분을 올리는 것도 같고 알쏭달쏭하네요.) 전 언제나 그러했듯 제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아직은 설레발(이미 전 글에서 설레발 잔뜩 쳤지만)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간단히 제가 느낀 자유기술이 제게 해준 것에 대해 써볼께요.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것과는 달리 고정된 영역에 소리를 잡아두는 일이며, 자기와 분리된 객체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글을 씀으로 해서 기억에 대해 책임을 글로 미룰수도 있고 글에게 감성과 사고를 짊어지게 하고 자신은 편안히 쉴 수도 있죠. 다른 무엇보다도 사고는 모순되거나 이중, 삼중, 사중적이더라도 그대로 굴러가지만 글은, 문자는 쓰는 그 순간에는 단 한 글자, 한 획만 쓸 수 있습니다. 핀셋으로 바람을 고정시키듯, 글이라는 형식/한정이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은, 영상을 촬영하거나 소리를 녹음해서 자기 자신을 다시 보는 것과 거의 같은 효과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에서 나오는, 문자에서 나오는 '내가 보는 내 자신'은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객체가 되지만서도 자기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게 자신을 타자화시키며 그걸 바라보며 또 다시 내면화시키는 이 순환이 제 자신을 구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글쓰기란, 자의적인 거울인거죠. 그래서 제 안에 몬스터가… 아니 제 자신이 아주 작고 조그마한 한 점으로 응집되고 그게 조금씩 커져가는걸 느낍니다. 그 전에는 테두리로써 제 자신이 존재했지만 알맹이로써 제 자신을 제가 인식하거나 하진 못 했거든요.


자유기술은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한테나 효용이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고, 다른 방법으로는 자유구술이나, 자유무용이란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으면 되는 거라고, 자신을 타자로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좋은 목소리 녹음 앱도 많고, 영상 촬영도 스마트폰만으로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뭐, 캠코더로 자신을 찍어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게 매우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자기 자신을 만나려면 그것을 비춰주는 도구가 있어야겠죠. 우리는 평생, 실재의 자기 자신을 볼 일은 (혹시 눈을 타자에게 이식한다면 모르겠지만) 없어요.  저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고 그것으로 구축해서 별 문제가 없나봅니다. 저는 그러니 저의 길을 가야겠죠. 그럼 다음에 또 이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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