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레거시 The Bourne Legacy (2012)

2012.09.06 00:44

DJUNA 조회 수:14418


로버트 러들럼은 1980년부터 90년까지 제이슨 본이라는 액션 주인공으로 한 삼부작 소설을 썼는데, 이들 중 [본 아이덴티티]는 리처드 체임벌린 주연의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로 각색되었고, 삼부작 전편은 그의 사후에 맷 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작과 스토리가 그럭저럭 비슷한 건 첫 번째 영화 [본 아이덴티티] 뿐이고, 이후 두 편의 영화는 그냥 이름만 빌린 것에 불과하죠.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2, 3편은 영화가 더 좋거든요.

제이슨 본 시리즈는 러들럼 사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에릭 반 러스트베이더가 작가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여전히 러들럼의 이름을 상표처럼 달고 있지요. 2004년부터 지금까지 7편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전 안 읽어봐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이슨 본이 주인공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이와 시대배경은 어떻게 처리했으려나요? [본 아이덴티티] 때만해도 본은 젊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다면 70대 노인네겠네요.

[본 레거시]는 러들럼 사후에 나온 첫 번째 소설 제목입니다. 하지만 저번 삼부작에서 각본을 맡은 토니 길로이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에서는 오직 제목만을 빌려왔어요. 심지어 주인공도 제이슨 본이 아닙니다. 본처럼 살인병기로 훈련된 애론 크로스라는 또다른 스파이지요.

그러면서 왜 여전히 제목에 '본'이 들어가냐고요? 영화는 계속 거기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본 얼티메이텀]과 시간이 겹쳐요. [본 레거시]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대부분 [본 얼티메이텀]에서 촉발된 것들이고요. 하지만 그래도 본의 이야기가 이렇게 꾸준히 나오니까, 반갑다기보다는 짜증이 납니다. 영화 중반까지 영화는 여전히 애론 크로스가 아닌, 본의 이야기거든요. 그렇다고 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이야기가 흐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죠.

애론 크로스의 이야기가 발동이 걸리는 건 영화 중반부터입니다. 그 전에도 열심히 액션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뒤에 배경으로 깔리는 제이슨 본의 이야기 때문에 그 위기일발 액션의 중요성은 느껴지지 않았죠. 그는 제이슨 본 사건 이후 진행된 스파이 청소작업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역시 비슷한 청소작업의 생존자인 연구원 마사 셔링을 위기상황에서 구출하는 순간에야 겨우 주인공의 위치에 오릅니다.

그 뒤로 그는 여러 가지 액션을 합니다. 지붕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몰며 불가능한 곡예를 선보이기도 해요. 토니 길로이는 폴 그린그래스와 같은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지만 이 모든 장면들을 아무런 무리 없이 소화해 냅니다. 종종 레퍼런스들이 보이긴 하지만 (특히 마닐라의 추격전은 [터미네이터 2]의 향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이들은 모두 재미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전 삼부작과 함께 놓으면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번 영화들에 비하면 [본 레거시]는 너무 가벼워요. 본이 전세계적인 음모와 싸우며 정체성 고민을 하는 동안 애론 크로스는 오로지 살기 위해 뜁니다. 물론 그건 아주 중요한 동기죠. 하지만 본과 비교하면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애론 크로스는 비교적 작은 인물이며, 영화도 거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좋은 배우들을 기용해서 멀쩡한 모양으로 만든 영화지만, 아무래도 전 이 계획 자체가 실수인 것 같습니다. 제목이 본이 들어간다면 본을 넣어야죠. 그래도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제목이 무엇이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고요. [본 레거시]는 지금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엉성하게 끼어있습니다. (12/09/06) 

★★☆

기타등등
영화의 시대배경은 2005년이에요. [본 얼티메이텀]은 [본 슈프리머시] 직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새 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고려해보면 2005년도 참 옛날이죠. 유튜브가 만들어진 게 2005년이랍니다. 그러니 영화에서 에릭 바이어가 유튜브에서 증거 영상을 찾는 장면은 고증 실수.


감독: Tony Gilroy, 출연: Jeremy Renner, Rachel Weisz, Edward Norton, Stacy Keach, Neil Brooks Cunningham, Scott Glenn, Donna Murphy, Zeljko Ivanek, Albert Finney, Oscar Isaac, David Strathairn, Elizabeth Marvel, Joan Allen

IMDb http://www.imdb.com/title/tt119417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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