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8 23:54
밑에 에아렌딜님 글에 댓글을 달려다가, 머리를 쥐어뜯어보아도 뭐라 말해야 좋을지 도통 모르겠어서
이럴 땐, 기가 막힌 말들을 이미 적어두었을 시인들의 외로움에 대한 시들을 건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외로움, 하면 또 시인들이죠- -b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 중에서 추려보았는데, 혹시 같이 나누고픈 시 있으신 분은 공유해주셔요.
이 참에 파일 하나를 만들고 있어요. 외로움을 노래한 시들 모아서 :)
우선, 외로움의 잔혹함을 노래한 시들입니다.
외로움의 폭력 - 최승자
내 뒤에서 누군가 슬픔의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고 있다
요즈음의 꿈은 예감으로 젖어 있다
무서운 원색의 화면,
그 배경에 내리는 비
그 배후에 내리는 피.
죽음으로도 끌 수 없는
고독의 핏물은 흘러내려
언제나 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인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을 길목에서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 5 - 이성복
물 고인 땅에 빗방울은 종기처럼 떨어진다 혼자 있음이 이리 쓰리도록 아파서 몇 번 머리를 흔들고 나서야 제정신이 든다 종아리부터 무릎까지 자꾸만 피부병이 번지고 한겨울인데 뜰 앞 고목나무에선 붉은 싹이 폐병환자의 침처럼 돋아난다 어떤 아가씨는 그것이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견디려면 어떻든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앞의 두 편이 외로움의 절절함을 알아주었다면, 다음에 소개할 두 편은 개인적으로는 외로움을 조금은 누그러뜨려주는 시였어요.
외롭지 않기 위하여 - 최승자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소리만이
빈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 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새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마지막으로, 외롭다는 말을 한다는 것, 그것을 듣는다는 것, 그렇게 대화를 한다는 것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은 시를 덧붙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 것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도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길은 잘 모르지만, 뭐 그냥 이렇게 같이 찾아가는 것 아니겠나 싶습니다.
같이 찾다보면 벌써 조금씩 따뜻하더라고요. ㅎ
2012.07.18 23:57
2012.07.19 00:03
2012.07.19 00:14
2012.07.19 00:18
2012.07.19 00:58
2012.07.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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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9 01:14
2012.07.19 01:58
시보다도 렌딜님을 위한 아해님의 게시물이
태풍만 갈게 아니고 온기도 함께 일본으로 갔으면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