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2 08:05
어제 데미안 라이스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몇 건의 후기쯤은 있으리라, 그러면 댓글에 몇 줄을 더하리라 생각했는데 없네요. 내한공연 소식을 처음 접한 것도 듀게를 통해서였거든요. 안으로 갈무리하는 편이 더 적절한 공연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억을 되짚어보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상보다 차가운 바람을 견디고 올림픽홀을 찾아들어가 만난 쌀아저씨의 첫인상은, 정말 머릿속에서 그려오던 버스킹하는 청년 느낌이었어요. 앨범 자켓이나 포스터에서 봐온 모습보다 머리와 수염이 길더군요. 제가 최근의 모습을 팔로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소박(해보이는)한 의상과 맞물려 그다지 작지 않은 공연장이었음에도, 길거리 구석 광장에서 공연하는 버스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공연은 몇 곡 연주하고, 중간중간 노래의 동기나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다시 노래하는 방식이었어요. volcano를 부를 때는 중간에 노래를 끊더니 관객 100명 정도를 무대로 불러냈습니다. 저도 가고 싶었지만 2층 끝자리여서 그러지 못했죠. 그는 무대 뒤쪽으로 자신과 딱 붙어 관객을 둘러앉게 한 뒤 파트를 나눠서 코러스를 부르게 했고, 거기에 맞춰 자기도 노래를 불렀어요. 무대로 나간 관객들은 사진을 찍으려 쌀아저씨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도 하고, 노래가 끝난 뒤에는 쌀아저씨와 하이파이브도 했습니다. 부럽더군요. 그는 웃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crazy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곡들은 rootless tree와 amie, 그리고 앵콜로 부른 cold water, hallelujah, the blower's daughter였어요.(노래 순서가 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역시 평소에 좋아한 곡들이 라이브로 들어도 더 좋더군요. 특히 에이미가 어떤 이미지와 사연을 그리는 것인지를 그가 설명할 때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콜드워터의 가사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은 한동안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the blower's daughter가 당연히 마지막 곡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한 젊은 여성분이 나오더니 쌀아저씨와 나란히 무대 위 어느새 마련된 테이블에 앉더군요. 남성이 바에서 작업을 거는 상황을 설정해놓고 레드 와인 한 병을 두분이서 나눠서 모두 마셨습니다. 각자 네 잔씩을 원샷했지요. 하지만 '남자친구 만나야 해요'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여자가 쌀아저씨를 떠나자, 술에 취한 목소리로 쓸쓸히 와인 잔을 든 채 부르기 시작하는 cheers darlin. 유일하게 녹음된 반주가 쓰인 곡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벤치에 쪼그려 앉아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마지막 곡을 마무리했습니다.
어쿠스틱기타(물론 오베이션기타이고, 이펙터와 엠프를 포함하지만)와 피아노, 그리고 목소리만으로 그렇게 소박하면서도 꽉 찬 무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경이로웠어요. 진정성 있는 따스한 절규가 주는 떨림을 오랜만에 느껴서 무척 기뻤습니다. 정제된 기타 소리와 진심이 담긴 목소리, 그리고 자유로움. 역시 '음악은 포크가 갑'이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김광석씨가 살아 계시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음이 조금 울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감상에 별 문제가 없는 음향시설이었던 것 같고, 후반부 쌀아저씨가 쌩기타음과 쌩목으로 불렀던 노래가 맨 끝자리임에도 비교적 선명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올림픽홀이 공연장으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과도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의 무대 조명도, 제가 공연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냥 절대적인 느낌으로, 무척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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