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열등감, 대화 그리고 바낭

2011.10.30 05:46

산체 조회 수:2178

1. 제가 다니는 체육관에는 저와 친하게 지내는 꼬맹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일거에요. 체육관에서 하라는 운동은 안하고 옆에서 운동하는 관원들에게 훼방을 놓는 것이 그 녀석의 주된 일과입니다. 얼마전 제가 체육관에 들어서자 그 녀석은 저에게, "형은 고등학생이야 대학생이야?"라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자랑스럽게 뻥을 쳤지요. "고등학생이야", "그럼 1학년이야 2학년이야?" 그 꼬마는 다시 물었어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도 잘 몰라," "그런게 어디있어. 1학년이야 2학년이야?" 그 녀석은 그게 왜 궁금했던걸까요? 고등학생이랑 아저씨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1학년인지 2학년인지는 알아서 뭐하게. 참고로 저는 동안은 아닙니다. 얼마전까지는 동안이라고 박박 우기고 다녔는데 그런 뻔뻔함이 많이 희미해졌고 이제는 좀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단지 그 꼬맹이의 입장에서는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형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었겠죠. 어쨌든 형이고, 자기보다 덩치가 큰 사람들. 초등학교 4학년짜리 관원도 형, 교복입고 다니는 녀석들도 형, 저 같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형. 그럴 수도 있겠네. 요새 고등학생들은 보통 나랑 10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걔네들이나 나나.




2. 제 주변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렵사리 취직에 성공하거나, 예쁜 연애를 이어가거나, 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말을 잘 붙이거나, 기타를 잘치거나, 성실하거나, 농담이 재미있거나... 등등. 저는 진심으로 그런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러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들로 인해 어떤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 나도 저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잘하지 못할까. 잘하지 못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을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까. 등등. 이런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다보니 열등감을 느끼는데 아주 능숙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대상이고 일인데, 귀신같이 열등감을 느낄만한 무언가를 발견해 냅니다. TV를 볼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하다못해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구경할 때에도. 나와 비교해 다른 사람이 나은 점을 고찰하고 그 부분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려 노력합니다. 저 사람은 저런 부분이 나보다 낫구나. 저 사람은 저래서 좋겠네. 나는 아닌데. 이 지경이 되다보니 이 점에 있어서 만큼은 제 자신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열등감에 있어서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3. 지난 달에는 휴대폰 요금으로 국내통화료 639원, 문자사용료 360원이 나왔습니다. 그 전 달 요금인 959원, 460원에 비해 조금 더 아낀 셈이 되었네요. 추석 때 제 휴대전화를 본 어린 사촌동생들은 깜짝 놀라더라고요. 당시 제 전화기에는 6월달에 받은 문자도 저장이 되어있었는데, 중학생인 사촌 동생이 보관하고 있던 가장 오래된 문자는 그 전전날 받은 메세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이틀 사이에 약 200통 가량의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은 셈이죠. 저같으면 수개월에서 1년에 걸쳐 보낼 분량의 메세지를 이틀만에 주고받는 거였어요. 요새 애들은 참 문자를 많이 보내는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혹시나 통신비 부담으로 걱정이 많으신 분들께 통화료나 문자메세지를 아낄 수 있는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친구가 없으면 됩니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가 없으면 한달의 스무통 근처의 메세지, 30분 미만의 통화만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화 사용을 줄이기 이전에, 사람들을 덜 만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자주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면 그에 따라 주고 받는 메세지의 양이 많아질 수 밖에 없어요. 언제 만날까? 어디야?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이거 봐요. 아무 내용도 없는 말들을 주고 받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겠죠?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다보면,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 받을 일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적게 만나다보니,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들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하루에 열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 같아요.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항상, 대부분의 날들은 이렇게 밤 늦은 시간까지 게시판을 들락거려요. 인터넷 구석구석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기웃거립니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듣고 싶은 말도 없는데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죠. 그저, 대화를 하고 싶은건가 봐요.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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