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1 16:34
재활기간! 다리 관절들이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군요. 오늘부터 물리치료라는 걸 시작했는데, 겁나게 아파서 찔끔 울고 말았어요.
그나저나 2년 반동안 아부지랑 떨어져 살다가 다시금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려니, 문득 어 이제 나 좀 어른이 됐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같이 안 사는동안 바깥세상에서 빡시게 굴러서 근가, 아부지가 어떤 사람인지 전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제가
못견뎌하고 끝내는 집을 뛰쳐 나가게 만들었던 아부지의 어떤 점들에 전보다 유연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게 가능해졌달까요. 뜯어고쳐 가며
같이 부대끼고 살자는 몸부림이 아니라, 납작 엎드려 이 시기가 지날 동안은 좋게좋게 잘, 견뎌 보자, 라는 제스처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들이니,
그건 관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아니에요. 뭐 딱히 풀어야 할 묵힌 감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단지, 상성이 안 맞는 관계는 그게
부모자식지간이라도 존재하기 마련이니, 우리는 마땅히 그에 따른 적절한 처신책을 가지고 있어야 할 따름이라는 것.
어제 저는 아부지랑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말 통하지 않음의 막막함 앞에서 할 말도 말할 의욕도 잃어버리고 그저 입을 딱 벌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벌컥 화를 내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 밀어붙이거나, 아예 입을 닫고 대화를 거기서 중단했을 거예요. 그치만
잠시 기다렸다,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납득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부지가 견딜 수 있을
만한 수위로 감정의 농도와 표현의 수위를 조절해 차근히 하고자 하는 말을 끝까지 다 했어요. 게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속상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말하고 이후에는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전혀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부러, 짐짓, 게다가 열심히 해서 마침내는
기분 좋다 소리까지 들어냈죠. 물론 지금 저는 아부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이니 헤게모니는 명백히 저쪽에 있고, 저로서는 당연히
했었어야만 하는 제스처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해소되지 않는 울화와 억울함을 참아 가며 제가 이걸 해 내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와씨
나 완전 대견돋잖아!!!!!!! 아오 썽질나 아오 아오 아오!!!!!!! 내 화는 대체 어디에 푼담!!!!!'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이 시점에서
하나도 안 대견;;;)
어제를 밟고 오늘 더 낡았고, 오늘을 딛고 내일 더 노회해집니다. 철들었다고 표현하지 않는 건 '철듦'의 정의를 어찌 하든 제 자신이 철드는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저 옛날보다는 사는 데 요령이 생겼음을 어제 문득 깨달았던 겁니다. 삶의 요령은 결국 관계를 풀어나가는
요령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식의 꼬인 관계는, 비록 그 매듭이 깨끗하게 풀리지 않더라도 어쨌건 모양을 유지한 채 지속될 수
있기만 해도 족할 때가 있으니까요.
앞뒤를 잘라먹어서 무슨 소린지 잘 알 수 없는 글이지만, 아무튼 전 어제 몹시 우울하고 억울하면서도 스스로를 대견해했고, 벱후님한테
몹시 게걸스러운 어투로 그런 자신의 마음상태를 생중계했다가 질색어린 거부를 당했습니다. 연애도 말만 나오면 유형별로 해본 척하고 개짓도
종류별로 해본 척하고 허영도 유형별로 부려본 척하며 선경험치 뽐내기를 수시로 시전해 벱후에게 '해본 언니'라 불리는 제가, 이제는 효도도
해본 척하게 생겼-_-............................그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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