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독거인의 연휴

2011.10.03 18:09

으으으익명 조회 수:2609

저는 연휴가 시작된 금요일 저녁부터,

연휴가 끝나가는 월요일 저녁 6시가 되가는 지금 이 시간까지 집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날짜로 치면 금, 토, 일, 월. 약 3박 4일쯤 되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히키코모리는 아닙니다.

(근데 문득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내게 일이 없고 만나야 할 지인들이 없고 가야할 직장이 없다면 나는 정말 히키코모리가 체질일 수도 있겠다.)

3박 4일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생산적인 모든 일은 중단했습니다.

말 그대로 동굴속의 칩거를 시작했지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 자체도 귀찮아서 본격적인 잠수 이전에 각종 sns를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도 꺼놨어요.

중간 중간 키기는 했지만 역시 전화와 문자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봤자 사흘동안 제게 온 연락은 6통 정도가 전부입니다.

써야할 논문이 있는데 논문은 무슨 손도 안댔고,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지요.

심지어 양치와 세수를 제외하고는 씻지도 않았고 설거지도 안했고 청소도 안했고 빨래도 안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꼬박꼬박 운동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2층 다락방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 조차 귀찮았습니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찾아왔다거나, 절대적 무기력증이 온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정상인의 생활을 했던 제게 다시 제 체질에 최적화된 '잉여생활'을 선물하고 싶었을 뿐.

이때 아니면 언제 해봐!가 발동한 것입니다. -_-...

여튼 3박 4일이라는 꿈 같은 시간동안 저는 사람이 잘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잠량에

러닝타임이 3시간은 되는 p.t. 앤더슨의 영화 두 편을 보았고 bbc드라마 빛을 그린 사람들을 봤으며

미드 슈트 1시즌을 끝냈고,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 2권을 끝냈으며, 지금은 가십걸 시즌3를 복습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정상인의 생활을 해야하기에,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돌리고 1층 청소를 했습니다.

이제 2층 다락방에 올라가는 일은 잘 때 빼고는 없을거에요. 저기만 올라가면 세상만사와 연을 끊는 병이 도지는 것 같아서요.

여튼 독거한 지 1년이 넘어가는 마당에 새삼 또 깨닫습니다. 제 몸과 마음은 혼자 사는 것에 최적화되가고 있다는 것을요.
저에게는 어느정도의 휴일이 허락되면 늘 같은 패턴의 병이 도집니다. 여행가는 것보다 이게 더 쉬는 기분이랄까요. 항상 이래요.

그런데 만약 제가 솔로가 아니라면 이런 기쁨은 누릴 수 없었을테죠(...)

신경써야 할 누군가, 연락을 기다려야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런 생활을 못하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전 슬프지 않습니다. 솔로는, 더군다나 독거인의 세계는 정말 아름답고 충만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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