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어 생활

2011.08.27 09:37

흔들리는 갈대 조회 수:4191

  홍콩에 오기 전엔 홍콩은 영어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학교 다닐 것도 아니고 회사 나갈 것도 아니니 아이 영어만 잘 신경쓰고 저야 마트에 가서 물건 집고 계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홍콩에 오니 마트보다 가게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거나 재래시장을 이용할 일이 많습니다. 재래시장은 영어가 안 통해 손짓발짓 합니다. 커튼 가게에 가서는 너무 답답해서 멀고 먼 고등학교 시절 한문 수업 시간을 떠올리며 한자로 써서 간신히 의사소통했습니다. 그런데 한자 용어도 우리나라와는 틀립니다.

 

  영어는 생각보다 잘 안 통하지만 그래도 살다보니 3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1번. 영어 아주 잘 한다. 그런데 너무 빨리 말한다. 제발 좀 천천히라고 말하기엔 자존심 상한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말할 타이밍도 놓친다.

2번. 영어라곤 헬로우, 땡큐, 하이, 바이바이밖에 못한다. 차라리 손짓발짓으로 하니 어떨 땐 편하다.

3번. 영어가 매우 빠르다. 그런데 발음도 억양도 이상하다. 몇 번 들어보니 억양은 광둥어 억양, 발음은 받침이 제대로 발음되지 않아 약간 새는 것 같은 발음. 

 

  3번이 가장 힘들어요. 일단 홍콩에 영어 쓰는 사람들은 한국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안 겪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알아듣지를 못하니 미치겠습니다. 어제는 도서관에 대출 카드를 만들려고 하다가 3번이나 다시 설명을 들었어요. 나중엔 이 아가씨가 그림까지 그리면서 천~천~히 자세히 말해주는데, 뒤에 지나가던 아가씨 상사는 계속 쳐다보고... 그러고 나서 제가 좀 이해됐다 싶으니 다시 엄청 빨리 블라블라블라...ㅠㅠ 처음엔 마트 푸드코트에서 음식 세트를 사는데 점원이 저에게 '슈가' 어쩌구 하더라구요. 그냥 이렇게 쓰니까 '슈가'하면 설탕인 줄 알지만, 그 이상한 억양을 들었을 땐 무슨 말인지 몰라서 "왓 이즈 슈가?"했어요. 그랬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스위트..."어쩌구 해서 그제서야, "아~슈가"했죠. 에휴~  이제 좀 익숙해 진 것 같아도 영 적응이 안 되네요. 홍콩 사람들은 일단 영어를 했다 하면 어쩜 그리 빨리 말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말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리고 사소한 억양, 발음 차이에 신경쓰다보니(이게 무슨 말일까?하며) 또 흐름을 놓치고 그러네요.

 

  그래서 요즘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데, 선생이 영국사람입니다. 저를 촌사람이라고 하셔도 할 말 없지만, 솔직히 한국에선 미국식 영어 쓰는 사람만 봤는데, 여기서 길에 지나다니는 서양 사람이 영국식 영어를 하는 걸 처음 봤을 땐 많이 신기했어요.  어쨌든 선생이 영국 사람이니 저에게 발음교정하시고(ㅠㅠ), 나름 학교 다닐 때 영어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니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나중엔 전자 영어 사전 상비하여 계속 찾고, 아는 단어도 생각 안 나고, 작문 숙제 나왔는데 땀 한바가지 흘리며 하니 콩글리시인지 여기저기 줄 쳐져 있고, 같이 문제 푸니 반타작. 예전에 사람들이 영어는 아무리 해도 안 늘어서 하기 싫다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고 있어요. 나이가 있으니 잘 들리지도 않고...  그런데,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쬐끄만 애들이 영어 유창하게 쓰며 놀고 있잖아요? 그걸 볼 때마다 저는 아들에게 "엄마는 6살짜리 꼬마보다 영어를 못해~."(ㅠㅠ)해요.  어제는 도서관 일도 있고 해서 결국 너무 기가 죽더라구요. 이러면 안 되는데.

 

  기운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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