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3 23:39
며칠 전,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한 5,6년만의 연락인가요? 정말 오랜만이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공동작업을 했던 사람이고
이래저래 한때나마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예요.
그렇다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거나 친밀한 교류가 있던 사람은 아니었고
일하면서 조금 불쾌한 기억도 있던 터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죠.
암튼 이 사람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 전부터 나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나요.
그냥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서로의 근황을 말하고(전 결혼했다 블라블라)
그 사람은 제게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달라더군요. 할 말이 있다면서요.
뭐, 일에 관한 얘길 하려나? 별 생각없이 가르쳐줬는데
나중에 메일을 확인해 보니 황당무계한 얘기들이 가득합니다.
아주 긴 메일이었죠.
요약하자면, 자긴 독실한 기독신자이고 기도를 하다가 나에 대한 계시를 받았는데
내 독설과 날카로운 성격 때문에 남편이 괴로워 죽고 싶은 상태라나요.
한마디로 내 남편을 살리기 위해 메일을 쓴다는 겁니다.
(아니, 내가 결혼했다는 말에 독신주의자 아니었냐면서 놀랄 땐 언제고!!)
암튼, 확신에 차서 남편을 살리려면 성경에 대한 무지를 씻고 성경공부를 해야하고....
나와 남편이 크게 쓰일 사람이라는 계시가 왔고... 암튼 많은 얘기들이 있었습니다..ㅡ ㅡ;;
난 똑똑하니 자기말을 잘 이해할 거라는 둥의 회유도 한 가득.. 남편 죽는다 협박도 한가득...
(너 왜 이리 된 거니??)
자기가 다니는 대형교회에 오라는 말과 함께
자긴 기도하는 딸인데 응답이 아주 잘 오고 있고 그 응답에 따라 살면 삶의 절로 풀린다는 뭐 그런 얘기가 있었고요.
그냥.... 딱 봐도 신 받은 무속인과 똑같은 행동이더군요.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너무 대놓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요새 교회에서는 이런 행동을 권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급한대로 김하중이 썼다는 대사1,2를 권한다는군요.
자기 행동이 황당한 게 아니라 고귀한 것이다라는 설득을 하려고
이 책을 권한다는 혐의가 짙게 들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나 옳다는 사명감에 가득차서
전혀 앞 뒤 분간없이 전투적으로 내 상황을 이러이러하다고 우기고 있구요.
자기가 받은 계시가 틀리면 얼마나 망신스러울 거라든가,
갑자기 이런 메일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 거라든가 하는 성찰이 전혀 없는 일방적인, 거의 폭력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이렇게 사리분별이 없던 사람이 아니거든요.
남 앞에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던 사람이구요.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냥 전 에고가 너무 강하구나 정도로 이해했었구요.
전화로 했던 얘기들도 멀쩡했는데....
원래 이런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건지....
남편은 발톱 깎고 있다가 메일 얘기 듣더니 완전 넘어가고
나보고 **이가 나에게 너무 관심이 많은 거 아니냐며 놀리네요..ㅡ ㅡ
몇 마디 해주려다가 도저히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닌 걸로 판단
무반응으로 대처하고 메일은 삭제했는데 조금 전 또 메일이 왔습니다.
읽지 않고 삭제했어요. 이런 식의 들이대기를 무작정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뭐든 답변을 주면 더 무서운 사명감으로 똘똘뭉쳐 달려들 거 같고.
암튼 씁쓸합니다.
대체 이 나라에서 이성은 왜 이리도 푸대접을 받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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