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MF세대가 성인이 되어 가혹한 빈곤과 마주친 것이건, 지방 소도시 출신 젊은이가 상경하여 서울 문화의 높은 진입장벽과 마주친 것이건,

아비가 없거나 어미가 없다는 가족의 결핍과 마주친 것이건 간에,

내가 그 마주침의 과정에서 어떤 정념에 수동적으로 빠져들 때,

그 정념은 모두 슬픔이다. 슬퍼하는 자는 모두 노예다.

 

그래서 '명랑해져라'는 그녀 세대의 정언명령이다.

슬픔이라는 정념의 노예가 되지 않고 상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두 가지 특질이 있다. 김애란의 인물들은 IMF현실, 서울 문화의 은근한 배타성, 가족의 결핍 등과 마주친다. 마주치는데,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 강하지 못하고, 상처와 싸울 만큼 강하지도 못하다.

그녀들을 조력해 줄 키다리 아저씨도 없다. 국가도, 이념도, 가족도 무력하다.

그녀들은 모두 고독한 개인의 안간힘으로 그 정념을 개관함으로써 이겨낸다. 그 마주침의 기록이 핍진하고 그 안간힘이 애틋하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달려라 아비'론

 

 

부슬비 내리는 저녁, 신형철의 책을 다시 읽었어요.  우리 세대의 정언명령이 '명랑해져라'라는 문장에 노란 줄을 찍 그었습니다.

담담한 위로를 받았어요. 김애란의 소설보다 평론에서 더 위로를 받은 건 개인적 취향 때문이지만.

 

 

2

모친이 '종로의 기적'을 홀로 보고 오신 날. 멀티플렉스 극장에 관객은 달랑 여섯 명. 에어콘이 휭휭. 그려도  '여자 하나, 커플 하나, 남자 하나 ...' 라고 세시는 걸 보니 단란하게 느끼셨나 봐요.

 

병권은 끝내주게 똑부러지드라, 욜은 귀엽드라, 쉴새없이 웃고 울며 봤다 (아쉽지마는, 사윗감으로도 참 괜찮은 똑똑하고 귀여운 애들이야, 라는 엉뚱한 감상도!)

그래도 말이지 막이 내린 후에, 오늘까지도 여전히 마음에 턱 걸리는 건 영수 에피소드..라는 감상을 오전 내내 졸고 있는 저에게 폭풍수다.

귀여워라.

 

 '게이'라면 몸서리 치는 (죄송합니다...표현이 거칠지만..진짜 그래요) 남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으시대요.

아, 또, 극장 나오는 길에 한 커플. 여자가 남자에게 '어땠어, 재밌지' 물으니 '으....찝찝해..'라는 걸 보셨대요. 개념없는 그런 놈 만나지 마라, 넌. 그러시네요. 

 

아무래도 '엄마'라 그런지 자식같고 가여워서 많이 울었다고. 울면서 오징어, 팝콘 냠냠냠 드시고. 또 울고. 집에서 싸간 과일 냠냠 드시고.

병권이나 욜이나 소감독님이나 모두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싸우는 분들이지만,

자라면서 얼마나 많이 핍박받고 철 모를 땐 또 얼마나 자기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상처받았겠니 하시면서요.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모님에게 많이 감정이입하시네요.

 

 

3

"장애가 있는 아이같은데요, 가방으로 벽을 마구 치며 뛰어다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사람들 위협하고요..빨간 티 입었어요. 헉헉"

덜덜 떨면서 고하니, 공익요원이 동료에게 매우 간단하게 말합니다.

"지하에 미친 놈있대"

 

열여섯, 열일곱 정도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장애가 있는'이라고 했을까요. 미친 사람같아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장애가 있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요.

'미친'이라는 말을 안 쓰고 싶어서 무서워 죽겠는데 돌려돌려 설명했더니 말이 또 너무 길어졌고. 뭔가 정리는 안 되는데,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던 일.

 

4

아이의 얼굴에는 분노가 흘렀어요. 어딘가,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욕인지 웅얼거림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데, 커다란 백팩으로 벽을 탕탕 치며 뛰어다니는데

왜 그렇게 무섭고 파르르 떨리던지요.

원체 사람에게 겁이 없어서 밤길도, 수상한 사람 곁도 잘 걸었었는데

들고 있던 컵이 떨어져 산산조각날 정도로 세게 팔을 맞고 나서는 반사적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덜덜 떨려요.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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