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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학교에서 '낙태를 하는 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죠. 비싼 옷 입고 비싼 식사와 비싼 커피를 마시는 애들이 있는 강의실에서 이 주제가 던져지고 교수가 외쳤죠.

 

 "자 이제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시작합시다."

 

 전 어이가 없었죠. 세상에 임신을 한 사람들과 그들이 당면한 수천가지 상황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옳은지 옳지 않은지 토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요. 그래서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해 토론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그냥

 

 '낙태는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냐면 옳지 않으니까요."

 

  라고 짧게 발언하고 C마이너스인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 하나만이 있는 거라고 봅니다. '네 가까운 여자애가 성매매하면 넌 괜찮겠냐?' '네 여친이 임신했는데 낙태하면 넌 좋겠냐??" 같은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자면..당연히 괜찮지 않죠. 굳이 가까운 사람이라서 괜찮지 않은 게 아니라 캐나다에 사는 아만다가 그렇더라도 괜찮지 않아요. 하지만 문제는 그런 상황까지 와버렸다면 성매매를 하는 것 외에, 낙태를 하는 것 외에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에 이미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요? 괜찮고 괜찮지 않고를 떠나서 그냥 다른 선택권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그 문제와 상관없는 곳에서 말하며 '강하게'말합니다. 대개는 옳은 말을 하죠.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얼추 70%, 80% 정도의 옳음은 다 가지고 있어요. 꽤 똑똑한 사람은 10가지 방향에서 바라보면 그중에 9가지 면은 옳은 90%정도의 옳은 의견을 내고요. 그런데 80%, 90%정도로 옳은 얘기를 하면서, 10%나 20%는 놓치고 있으면서 그게 가장 옳다는 듯 아주 강하게 말하죠. 게시판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건 대개 말의 내용보다 이런 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종류의 토론을 할 떄 집중해야 하는 건 행위의 옳고 그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관없는 곳에서 어떤 결론을 내든 소시오패스들은 도덕이나 윤리는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요. 이런 문제를 말할 때 중요한 건 위에 말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당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이라는 건 그런 사람들에게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거지 남의 문제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시작하면 안드로메다로 곧잘 가니까요.

 

 낙태를 정말 하기 싫은데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고 성매매를 정말 하기 싫은데 그것 외엔 선택권이 없는 사람도 있겠죠. 정말로 하기 싫은 것만은 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법안을 설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끼리의 토론이라면..뭐 그사람들이야 일반사람보다 훨씬 더 똑똑할 테니 제가 의견을 낼필요도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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