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에 대한 찬양글을 쓰기 전에...작년 표절을 한 죄로 감옥에 간(맞나?) 바누스란 사람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표절 시비가 터지기 전 한 기사에서 동료 작곡가가 그에 대해 정말 음악의 구도자 같은 사람이고 순수하고 아이같고 오직 음악밖에 모르고 사는, 존경할 수밖에 없는 열정과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던 글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전 그 글을 보고 바누스라는 인간이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레인맨의 더스틴호프만 같은 사람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한 분야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든간에 상관없었죠. 어느 쪽이든간에 별로 대단할 게 없었으니까요. 만약 그가 정말로 자나깨나 음악만 하는 레인맨 같은 인간이라면, 그렇게 노력하고서도 어째서 외국의 그랜드 마스터급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건지, 사실이라면 좀 슬프다고는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인생에 있어 정말로 최선을 다하는 경우는 별로 없죠. 저도 물론 노력을 해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본 적은 없고 그럴 엄두도 안 나더군요. 정말로 최선을 다하는 건 고통이니까요. 고통을 견디고 100의 행복에 도달하는 것보단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고 30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전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저 같은 사람에게 있어 박지성은 불가사의한 존재죠

 

 박지성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축구 교도소'에 대해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자신은 축구 교도소에서 살고 있고 일주일에 90분의, 뛸지 안 뛸지 모를 경기를 위해 6일 동안 축구만 생각한다는 말이었죠. 요즘은 뭐 다들 똑똑하니까 말을 그대로 믿지 않죠. 누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그 말의 내용은 신경 안쓰고 그 말을 한 의도를 분석하느라 바쁩니다. 저도 뭐 그런 걸 좋아하지만 박지성이 말했던 '축구 교도소'에 관한 말은 의심 없이 믿습니다. 자신은 축구 교도소에서 살고 있고 일주일에 90분의, 뛸지 안 뛸지 모를 경기를 위해 6일 동안 축구만 생각한다는 그 말이 간지를 내기 위해 허세를 떤 건지 사실인지 검증할 필요가 없었던 건 박지성이 계속 그곳에서 살아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아니 박지성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동양인 선수는 축구 교도소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면 맨유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축구 지식으로는요. 박지성의 경쟁자였던 리차드슨이나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재능있던 영건들은 대부분 맨유를 떠났습니다. 박지성은 남아있죠. 

 

 박지성은 키도 안 크고 주력도 대단할 게 없습니다. 유럽인들처럼 작은 몸집이면서도 다부진 신체를 가진 것도 아니고 오르테가나 데니우손같이 정말 미칠듯한 테크닉을 소유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킥력 하나가 대단해서 로또를 바라고 출전시킬 것도 없죠. 박지성이 체력이 좋다 좋다 하지만 진짜 슈퍼급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선 그것도 중상위권 수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지성이 체력 하난 최고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체력조차도 루니, 호날두, 테베즈 같은 애들이 더 쩔죠. 동양인으로 태어난 이상 같은 근육량에 근육의 질-흔히 탄력이라고 말하는 남미 선수들 특유의 신체능력도 없습니다. 최고의 리그에서 경쟁하려면 사이즈, 속도, 테크닉 이 세개중 최소한 하나는 갖고 태어나야 하고 최고급의 선수가 되려면 저 세 가지중 두 가지는 갖춰야 하는데 20대중반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할 때 박지성에겐 저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모자란 기술과 속도를 왕성한 활동량으로 보충해야 하는 그런 선수였죠.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 쯤 되면 후보 선수들도 어렸을 때 천재 소리 안들어본 사람 없을겁니다. 빅클럽까지 갈 것도 없고 중위권 팀에서 뛰는 정도의 선수들이어도 다 천재 소리 듣고 자란 사람들이죠. 물론 박지성도 어렸을 때 팀에서 제법 두각을 나타냈었다곤 하지만 이천수가 어린 시절에  뿜어낸 포스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에 굳이 20대 중반이라고 언급한 건 20대 중반이면 기술적인 성장이 완료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카타 선수가 인터뷰에서 오래 뛰면 구력이 자연스레 붙어서 드리블이나 트래핑이 나아진다고 했지만..나이가 든 후엔 기술적인 성장은 거의 없습니다. 나이가 든 후에도 얼마든지 쉽게 테크닉을 늘릴 수 있다면 엘만더나 크라우치가 왜 그러고 있겠습니까. 외국 테크니션들은 10대 때 이미 충분히 기술을 체득합니다. 그때의 경험들이 프로가 된 후에 정교하고 세밀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죠. 박지성이 처음 맨유에 왔을 때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속도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죠. 당시 프리미어리그의 속도는 K리그의 경기를 1.3배속 정도로 틀어놓은 수준이었습니다. 전반적인 경기 속도도 훨씬 빠르고  과장 좀 하면 패스를 마치 슛처럼 날립니다. 패스 속도가 빨라야 컷을 안당하니까요. 그걸 부드럽게 터치해서 수비 위치, 다음 동작까지 고려하며 떨어뜨려 놔야 하는데 박지성은 그게 잘 안됐죠. 그런데 놀랍게도 박지성의 퍼스트터치가 일취월장하기 시작하더군요.

 

 호날두가 경기에서 골 넣고 나이트에 섹스하러 갈 때 박지성이 뭘 했는진 모릅니다. 못봤으니까요. 제가 확실히 아는 건 20대 중반이 넘은 박지성의 테크닉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겁니다. 숏패스도 늘고 롱패스 실력도 확실히 늘었죠. 박지성이 안 한 것들을 말해보자면..페라리를 사지 않았고 여자친구 안 사귀었고 나이트에 원나잇 하러 안갔습니다. 제가 박지성이라면, 맨유에서 1~2년정도 유니폼 팔러 왔다는 욕 안 먹을 정도로 활약했으면 스스로 만족한 후 J리그나 K리그로 돌아와서 왕처럼 살았을 겁니다. 빌어먹을 이적설은 계속 나오고 더 선에서는 까대기만 하고 중요한 경기엔 못 나가고 패스는 잘 안 오고 음식 입에 안 맞고 여자친구는 커녕 친구도 없고 날씨는 더럽게 칙칙하고 오직 축구만 있는 삭막한 곳에서 나가려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데, 스스로를 계속 축구 교도소에 가둬놓고 안 나오는 박지성을 전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물론 호날두가 노력을 안했다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최선을 다한다는 건 인생의 다른 것들을 포기한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건 고통인거죠. 그래도 박지성의 포스가 대단해진 지금이야 좀 널널하겠지만...아인트호벤에 첫 진출했을 때 홈팬들에게 쌍욕 들어가면서 축구했을 때는 축구 교도소가 아니라 축구 지옥에 있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위에 박지성이 재능이 없다곤 썼지만..축구 두뇌는 정말 굉장하다고 봅니다. (정말 재능없었으면 살아남았겠습니까;) 경기를 장기판처럼 그라운드 위에서 보는 듯 위치선정을 하고 모자란 신체능력을 두뇌로 보충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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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바누스에 대해 썼던 건 저도 사실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며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걸 마다하지 않고 말수는 적은,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이른바 '구도자'스타일의 노력파 말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정말 없더군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알아보면 그저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컨셉 잡는 사람들일 뿐이었죠. 진짜로 인생의 다른 것들을 포기하지도 않고 결과도 내지 못하면서 그냥 겉멋만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만은 믿습니다. 박지성이 존 테리와 경합을 벌일 때, 드록바의 드리블을 저지할 때, 골을 넣을 때 그가 노력으로 안될 걸 되게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까요.  최선을 다하는 걸 고통이라고 쓰긴 했지만 박지성 정도의 경지에 가본적도 없으니 박지성이 어떤 기분일지도 사실 모르겠습니다...쓰고 보니 정말 쓸데없이 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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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성이 언젠가 축구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또다른 길을 걸으면 축구 보는 재미가 많이 떨어질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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