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1 14:29
친구 보러 뉴욕 왔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버스 타고 올 수 있는 거리거든요.
버스 검표는 아이폰에 있는 이메일을 보여주면 되는지라 표 잘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룰랄라
탑승하려는 순간 표의 예약번호가 짤려 보이길래 디스플레이를 가로로 뒤집으려고 여유만만하게 스냅,
그런데 다음 순간 아이폰이 급사한 겁니다. 아까까지 70% 이상 남아있던 배터리가 순전 방전된 거에요.
운전기사 아주머니가 저 앞에서 검표 중인데 우는 얼굴로 전화기가 꺼져 버렸는데 차에 타고 충전 후 표 보여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빨리 하래요.
근데 이노무 버스에 비치된 콘센트로 전원을 연결하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감감무소식.아이폰은 영면에 드신 듯했어요.
검표하는 아주머니에게 기어가서 전화기가 죽어 버렸다 표 한 장 더 사겠다고 하니 불쌍해 보였는지 그냥 가래요;;
근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 뉴욕에 가서 만날 친구 전화번호를 이 빈약한 하드가 외우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죠.
친구네 집 주소도 저 대신 외우고 있던 아이폰이 이제 말이 없으니 전 어떡하나요.
누구한테 전화기 빌려달라고 할 염치도 못 되고 친구 번호는 이 죽어버린 전화기에밖에 없는데
이 전화기는 재기의 가망이 없어 보이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어요 흑흑
서울쥐 찾아온 시골쥐처럼 짐가방 들고 친구네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서 김아무개 보러왔다고 하면 친구에게도 누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라도 만날 수는 있는 걸까
아무 호텔이나 잡아서 하룻밤 자고 내일 집에 갈까 피씨를 쓸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친구에게 이메일을 써볼까
백만가지 번뇌에 시달리며 버스는 굽이 굽이 달리는데 퇴근시간에 딱 맞춘 타이밍 덕택에 1시간 연착.그레잇. 펄펙. 엉엉.
친구는 친구대로 연락 없는 저를 걱정할 테니 마음은 더 초조해지고 시계 노릇을 하는 아이폰이 죽어서 그때까진 얼마나 늦었는지도 몰랐고
누구한테 물어보긴 역시 싫고...;
......
하여 결과적으로 지금 친구네 집이긴 합니다.
알고 보니 전화기가 완전 죽은 게 아니라 버스에 콘센트가 다 같이 고장난 거더라구요.
페덱스 들어가서 비싼 피씨 렌탈하고 피씨로 충전하니 10여분 후에 힘없이 깨어나더라구요.
친구랑 연락이 닿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멀쩡히 충전되어 있던 전화가 왜 드랍데드했는지는 의문인데요
여하간 오늘일을 계기로 전자기기에 너무 의존하지 않기로 했어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 번호 정도는 다 외우고 있었는데 그새 머리가 너무 게을러진 거에요.
전자기기 외에 버스 예약번호나 중요한 전화번호 같은 건 따로 메모를 하거나
제발 덕분에 좀 외우고 다녀야겠어요.
이렇게 호되게 당해야만 쓸만한 결심을 하나씩 하게 되는군요 흑.
아이폰이 죽어 버리니 뇌의 일부를 도려낸 것 같더라구요.
요즘은 공중전화도 찾기 어렵구요. 때마침 동전도 없어요.흑.
이러지 맙시다...라고 각성한 하루였습니다.
전화번호 외우는 거 중단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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