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인가. 아침 10시까지 회사에 나갈 일이 생겨서 부랴부랴 일어나 세수를 한 후에 얼굴을 닦으려고 보니 수건이 없다. 급한 마음에 화장지를 한 움큼 뜯어 툭툭 닦고 그대로 변기에 던져 넣었다. 그 양이 좀 많았던 모양이다. 글쎄 변기가 꽉 막혀 버린 거다. 와 야단났네. 그냥 두고 나가면 같이 살고 있는 아우님께서 틀림없이 열받아서 난리를 치실 텐데. 그래도 어쩌랴. 급한데. 일단은 출근이 먼저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밤 열한 시. 열두 시간 동안 내가 저지른 만행을 까맣게 잊은 채 룰루랄라 귀가했다. 야간목욕이나 할까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묘한 냄새가 난다. 그때 생각났다. 맞다, 변기. 화장실은 난장판이었다. (혹시 야식이라도 시켜놓은 참이시라거나, 비위가 약하신 분은 더 이상의 읽기를 중단해 주세요) 변기 위로 똥덩이가 둥둥 떠 있고, '배수관 막힘 용해제 유한 펑크린' 한 통을 다 쓴 듯 빈 통만이 덩그런히 놓여 있다. 

음. 저거 한 통을 다 들이부었단 말이지. 근데 안 내려갔단 말이지. 아마 아우님께서 싼 뒤에 외출하시기 직전에 부어놨을 터. 그거 붓고 열 시간쯤 지나지 않았을까. 아닌게아니라 똥덩이들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다. 지금쯤 물을 내리면 내려가지 않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레버를 작동함과 동시에 부우웅 하고 변기 물이 상승(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드는, 다급하지만 뭘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을 감정이란 정말이지...)하더니 죄다 바닥을 향하여 분출되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조땠다.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그때 시간이 밤 11시 30분. 나는 지갑을 들고 동네 할인매장으로 뛰었다. 다른 가게는 다 문을 닫았겠고 딱 한 군데가 자정까지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총알처럼 뛰어갔다. 계산대에서는 정산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막 뒷문을 잠그려는 참이다. 나는 생활용품 매장에서 '뚫어뻥'을 찾았다. 없다. 정산하는 아가씨한테 물어보니 지나가는 직원총각 하나를 따라가 보란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하며 한참을 찾던 총각. 티 없이 맑은 얼굴을 들더니 이런다. "없는데요."

"아저씨, 없으면 어떡해요. 안 돼요. 잘 찾아 보세요."
"여기 하나 있었는데, 누가 사갔나 봐요. 차라리 약품을 쓰시죠."
"해 봤는데, 안 되던데."
"어허, 이를 어쩐다."
둘이 한참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이내 총각이 씩 웃더니 "아, 맞다. 제가 스펀지에서 봤는데요..."

변기를 비닐이나 랩으로 꽉 막은 후에 물을 내리면 비닐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때 비닐에 압력을 가해 꽉 누르면 뚫린다는 거다. 자기가 스펀지에서 봤으니까 확실하단다.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단 말이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비닐이랑 랩을 찾아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햐 근데 그 똥물이 범벅이 된 변기 앞에 앉아서 비닐을 씌울 엄두가 안 나는 거다. 너 같으면 나겠냐. 어쨌거나, 내가 싼 똥도 아닌데. 

비닐을 이용한 방법도 있으니까, 변기를 뚫을 수 있는, 뭔가 좀더 깔끔한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부푼 희망을 안고 인터넷을 뒤졌다. 검색창에 '변기 뚫는 법'을 쳐봤다. 할렐루야. 있다. 정말이지 별의별 방법이 다. 비닐을 이용한 방법은 물론 옷걸이로 뚫는 법 염산으로 뚫는 법. 각각의 방법에 대한 소견과 함께 별점까지 매겨져 있다. 그중 1위가 바로 1.5리터 빈 생수통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간단했다. 생수통의 1/4지점을 평평하게 잘라 물이 차지 않게 수평으로 변기 안으로 밀어넣은 뒤 세 번쯤 펌프질을 해 주면 된단다. 그걸 시연해 보여주는 동영상까지 붙어 있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는 실로 감탄하고 말았다. 게다가, 정말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딱 5초 만에 뻥-, 하고 변기가 뚫려 버렸다. 그때의 그 기쁨, 그 환희. 이거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혹시 변기가 막히면, 엄한 거 사느라 돈 쓰지 말고 인터넷에 '변기 뚫는 법'을 쳐보시라. 그리고 반드시 빈 생수통을 사용해 보시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인터넷,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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