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4 10:22
시는 시선(視線)에서 시작하지만 시선(試線)으로 마무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는 언어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좋은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를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시를 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를 알기 어렵고 아름다움을 살고 있는 사람은 시를 찾지 않습니다.
어쨌든 시를 보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기에 서툴지만 멍한 시간을 틈타 시를 끄적거려 봅니다. 이 시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 뒤 반응이 재밌어요. 어떤 분은 “연애하시는 군요”라고 의심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라고 되묻습니다. “요즘에도 시를 적는 사람이 있군요”라고 생경해 하는 분도 있고요. 프로포즈를 앞 둔 사람에게 한 번 써먹으라고 고백의 시를 전해 주었더니 “이런 낯간지러운 글 안써도 난 커플이라네”라고 염장을 지르기도 합니다. 홍상수의 ‘하하하’에 나온 것처럼 가볍고 누구나 적을 수 있는 시가 아닌 시일지도 모르지만 이사 후 첫 글로 올려봅니다. 사실 이런 손발이 오징어가 될 만한 글을 올릴만한 공간이 듀게밖에 없습니다. -_-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머금은 이슬이
제 입술 위에 촉촉히 적시어진 순간
아카시아의 내음처럼 당신의 숨결은
저의 코끝을 찡긋거리게 하였지만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열면
그대가 바람이 되어 나무 뒤에 숨더라도
빨간 사과 같은 당신의 보조개는
따사로운 햇살처럼 내 볼 위에 내려앉길 알았기에
비밀로 할 수 있을까요
하얀 구름 같던 당신의 목소리가
저의 귓가에 내리던 순간
조곤조곤 속삭이던 저의 심장은
거대한 뱃고동이 되어 울려 퍼질 따름인데
당신과 맞닿은 순간
미욱한 자신조차
슴슴한 시간조차
파란 하늘의 소망이 되어
그대란 이름의 축복이 됩니다.
당신만이
당신만이
저의 시가 됩니다.
흐르는 시간의 결 사이로
아스라한 당신의 빛깔이 번져오면
펜촉을 지긋이 눌러
찰랑거리는 당신을 담아봅니다.
나른한 여백의 상념에
당신이 전해 준 낱말을 적어버려 하지만
흐드러지며 떨어지는 꽃잎처럼
아름다움은 스쳐 지나갈 따름입니다.
경건함을 알기 위한 아침의 기도조차
경박함을 잊기 위한 술 한잔의 쌉쌀함도
텅 비어야 할 눈물의 독을 가득 채워
다시 당신을 흘려 보내게 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여행을 하고 있나요?
익숙한 풍광의 길 사이로
시나브로 당신의 발자국 들려오면
느슨한 신발끈 동여매고
저벅거리는 당신을 따라갑니다.
무거운 일상의 짐 안에
당신이 떨구어 놓은 잎새를 비워보려 하지만
꽃이 져야 맺히게 되는 열매처럼
그리움은 덜어 낼수록 무거워질 따름입니다.
찬란함을 알기 위한 별빛 속의 순례조차
초라함을 잊기 위한 담배 한자락의 텁텁함도
고요해야 할 바람의 메아리로 퍼져 나가
다시 당신을 찾아 떠나게 합니다.
어느덧
우리가 함께 하지 않은
생경한 풍광 사이로
당신은 새로운 여행을 하고 있나요?
이젠
서로에게 할 수 없는
아련한 낱말을 꺼내 놓고
당신은 새로운 시를 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