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소도'

2024.09.11 14:50

돌도끼 조회 수:208

1990년 주연평 감독 작품.

화소도는 대만의 화산섬 녹도의 옛 이름입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정치범 수용...교도소가 있던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80년대에 대만에서 대대적인 흑사회 소탕이 있었고, 그때 대만을 대표하는 조직들의 큰형님들이 여럿 잡혀 들어가서 몇년간 화소도 신세를 졌었다고 합니다.
이 형님들 중 일부는 출소후 과거 세탁을 위해 연예오락업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마침 그무렵 홍콩에서 [감옥풍운]이 나와 대히트합니다.
감옥영화의 히트를 본 큰형님 한분이 자신의 화소도 생활을 영화화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봐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천황거성님(그냥 잘 알고 지내던 정도가 아니라 조직의 핵심인원이었더라는 이야기도...)에게 그 일을 맡깁니다.

처음부터 조폭이 기획한 조폭미화영화ㅂ니다. 영화계 사람들이 엮이고 싶어하지 않았겠죠. 그렇지만 왕년에 영화계의 천황거성이었던 왕우는 자신의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모읍니다.
그렇게 해서 왕우, 성룡, 홍금보, 유덕화, 양가휘, 가준웅 등... 당대 대만과 홍콩의 탑스타들이 한데 모인 호화캐스트로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홍금보는 깡패들 싫어하는 걸로 유명하지만, 오래전부터 왕우와 워낙 돈독한 사이였기 때문에 으리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성룡은 왕우한테 신세진 게 있어서 그거 퉁쳐주는 걸로 하고 참여했고...
유덕화, 양가휘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 출연했습니다.

감독은 왕우와 같이 [대복성]을 만들었던 주연평.(여담으로 이 [대복성]도 성룡이 왕우한테 신세진 것 때문에 출연했던 영화...)
꿈은 크게 꿨던 것 같아요. 온갖 스타들을 끌어모았으니 대만/홍콩에서 히트하는 거야 당연지사일테고 미국진출까지도 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치만 스타들을 아무리 끌어모아 봐야 결국은 콘텐츠가 좋아야지 성공하는 거니까요.

왕우는, 국내팬들에게는 60년대의 외팔이 영화들의 인상으로만 기억되고 있어서 아주 진지하고 폼나는 이미지로 알려져있지만... 해외 팬들에게는 괴작과 관련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재미나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냥 밀어부쳐버리고 그게 상황에 맞는지 개연성 핍진성이 있는지 같은 걸 따지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종종 뭔가 아스트랄한 영화들이 나오곤 하는데... 그니까 그런 스타일이 극대화된 케이스가 [대복성]같은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제작 스피릿이 영화 [화소도]에도 발휘된 겁니다.

스타들을 많이 모셔(...) 왔으니 그분들한테 각자 분량을 할당해야겠죠.
그래서 [화소도]의 스토리는 각각 따로노는 별개의 플롯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습니다.

영화의 뼈대가 되는 건 악덕 교도소장인 가준웅을 조사하기 위해 양가휘가 교도소에 잠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도소 안에는 마음은 여리지만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오게 된 홍금보가 이런저런 감옥안의 부조리를 버티며 지내고 있고 그런 홍금보를 의리로 똘똘뭉친 흑사회 큰형님 왕우가 돌봐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별개의 이유로 원수지간이 된 성룡과 유덕화가 들어오게 되고요.

왕우의 캐릭터가 아마도 찐 큰형님이 전하고 싶어한 영화의 주제---조직의 큰형님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를 보여주는 걸테고 가준웅과 양가휘의 이야기가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해 필요한 장치라면, 홍금보는 감옥생활의 에피소드를 채우기 위한 역할... 성룡과 유덕화는 아예 없어도 되는 사람들입니다. 순전히 이분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만들어서 끼워넣은 이야기.
다들 대스타들이니 각각 나름의 분량은 챙겨야하고, 그래서 이야기가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홍금보가 감옥에서 겪게되는 에피소드는 폴 뉴먼의 [폭력탈옥] 같은 헐리우드 고전 감옥영화를 고대로 베꼈습니다.

그러더니 영화가 막판에 가면 뜬금없이 영국 전쟁영화 [지옥의 특전대]를 고대로 베낍니다.

감옥 영화가 어떻게 [지옥의 특전대]로 이어지느냐고요...? 그냥 밀어부치는 거죠ㅎㅎ

큰형님의 바램과는 달리 영화는 대만에서도 홍콩에서도 망했습니다. 90년대는 아시아지역 관객들 입맛도 변했을 시기니까요. 그전처럼 막무가내로 아무거나 되는대로 갖다붙이는 스타일이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탑스타들이 줄줄이 나오는 영화에선...
미국 진출의 꿈...? 영미권 영화를 베껴서 짜깁기한 영화인데, 웃음거리 이상 되기는 어렵겠죠?



한국에서도 개봉전에는 나름 관심을 끌었습니다.
성룡과 홍금보가 같이 나오고 거기다 당시 막 뜨고있던 미남배우 유덕화도 나오는데다 왕년의 외팔이 왕우까지 나온다는데 어찌 관심을 안끌 수 있겠어요. 한국에서는 왕우가 만든 괴작들이나 사생활 문제등이 많이 알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쿨한 이미지를 지키고 있었으니...

근데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룡, 홍금보, 유덕화, 왕우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보러왔는데 그사람들 다 조연이고 생전 처음보는 넘이 주인공이더라?"

그 '생전 처음보는 넘'이 바로 양가휘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 인지도가 처참할 때라... 거기다 사실은 생전 처음보는 넘이 아니었어요. 양가휘는 [감옥풍운]의 주인공이었으니까. 게다가 일부러 [감옥풍운]을 의식하고 출연시킨 캐릭터였는데...
그니까 [감옥풍운]이 개봉할 당시만 해도 한국관객들 눈에는 주윤발만 보였지 '주윤발 옆에 있던 애'한테까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던 거겠죠. [감옥풍운]이 '주윤발 보러갔는데 양가휘한테 반해서 나오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으니까...ㅎㅎ



흔히 있는 일이지만 홍콩판이 오리지날 대만판 보다 한 30분 짧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만큼 대만판이 홍콩판보다는 좀 더 나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괴작이 멀쩡작으로 변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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